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50주년 기념전으로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마련했다. 한국 근현대기 100년사를 다룬 3개관 통합기획의 방대한 전시였다. 그러나 윤범모 관장 임명 첫해 야심차게 진행한 이 전시는 얼마 못 가 진·위작 및 복제본 의혹이 불거졌고 미술관은 공신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실제 당시 덕수궁관에 전시된 만해 한용운의 회갑연 시는 인쇄 복제본이었으나 외부에서 의문을 표하기까지 미술관은 까맣게 몰랐다. 독립운동가의 글씨 또한 위작 의심을 받아 전시 중 교체됐다. 이로 인해 도록까지 다시 제작해야 했다. 국립미술관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사진)는 채색화와 민화를 동일시해 ‘역사 왜곡’ 논란까지 낳았다. 채색화의 기원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을 수 있지만, 민화는 한참 후인 정조 때 궁중회화로 유행하다 19세기에 이르러 민초들의 삶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그런데 전시는 민화가 곧 채색화라는 식으로 정의하면서 혼란을 자초했다. 전시 교육자료에는 아예 채색화와 민화를 동의어화해 미술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5일 ‘입장문’을 통해 채색화와 민화를 동일시한 자료를 모두 수거했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뒤늦게 사과했다. 그러면서 올해가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라는 것에 주목한 기획이라고 설명했다.
하나 조선미술전람회는 조선총독부가 행한 미술행사이다. 일본의 관전(官展)인 제국미술전람회 등을 본뜬 것으로, 조선미술의 뿌리를 걷어내어 민족주체성을 고의적으로 거세하기 위해 시행됐다. 그럼에도 미술관은 이를 ‘한국 채색화 특별전’ 기획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쯤 되면 역사의식의 심각한 결여를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채색화 특별전’은 소홀한 작품 관리로도 구설에 올랐다. 최장 6개월 이상 전시하면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상범의 ‘무릉도원’을 1년 넘게 공개해 입길에 놓였고, 습기 피해로 전시 도중 철수된 김종학 작가의 ‘현대모란도’가 있던 자리엔 A4 컬러용지에 복사된 그림과 안내문을 투명 테이프로 대충 붙여놔 빈축을 샀다. 이는 누가 봐도 작품과 작가에 대해 존중해야 할 예술기관으로서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밖에도 윤범모 관장 체제의 지난 3년 반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지난해 10월에는 방역수칙을 어긴 채 업무 종료 후 특별히 국회의원들에게만 ‘이건희 컬렉션’전을 관람하도록 해 국회의원 ‘특혜’ 시비가 일었다. 올해 1월엔 ‘갑질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보복 차원의 인사조치가 있었다는 내용의 국립현대미술관 공무원 노동조합의 성명 발표가 나왔다. 최근엔 기관의 이름을 달고 행하는 일부 구성원의 외부 활동으로 사회적 잡음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연이은 사건들은 갈지자를 그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조직 쇄신이 필요함을 고지한다. 다만 국립현대미술관만 나무랄 순 없다.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문체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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