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늘 ‘자유’를 강조해왔다. 그들의 여러 말과 글을 보면 자유 신봉자처럼 비칠 정도다. 실제 윤 대통령의 연설에서 가장 자주 출현하는 단어는 자유다. 지난해 6월의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부터 지난달 20일 진행된 유엔총회 연설까지 총 4번의 연설에서 자유는 모두 111번이나 언급됐다. 박 장관은 지난 5월 장관 취임식에서 ‘자유정신’을 내세웠다. 그가 말한 자유정신은 기존 가치목록으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자유의 쟁취로 풀이된다. 문화예술 주무부처의 장으로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흔들림 없이 행동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창작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박 장관의 자유에 대한 애착은 과거 글에서도 곧잘 발견된다. 중앙일보 대기자 시절인 2019년 4월 작성한 ‘문재인 정부는 자유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라는 제목의 글과 2018년 10월 월간중앙에 기고한 ‘자유는 역사를 연출한다’는 글이 그런 예이다.
전자는 ‘4·19혁명’ 방명록(2018년 문재인)과 기념사(2019년 이낙연)에 ‘자유’가 빠졌다는 비판에 방점을 둔다. 후자는 조지 오웰의 “자유가 무엇인가를 뜻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기 싫은 것을 말할 권리”로 요약된다. 이 문장은 그가 2020년 4월에 쓴 ‘조지 오웰의 정치와 말’(중앙선데이)이라는 글에 다시 등장한다. 그가 자유에 얼마나 집착해왔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다.
문제는 두 사람이 입이 닳도록 말해온 자유란 지극히 자의적인 데다 편협하다는 것이다. 알맹이 없는 유엔총회 연설처럼 윤 대통령의 자유는 때로 공허하다. 박 장관의 자유는 위선적이다. 사실상 둘 다 ‘듣기 싫은 것을 말할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불거진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최근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보도한 MBC를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저자세 굴욕 외교’로 평가받는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대화가 진행된 9월21일, 뉴욕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48초’ 인사를 나눈 후 퇴장하며 참모들에게 한 불확실한 발언을 MBC가 자막을 왜곡해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언론의 사명은 진실의 추구이고, MBC를 비롯한 언론은 제 역할을 다했다. 다만 가치판단은 국민이 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윤 대통령 내외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기자와 언론사를 고소·고발하며 억압하기 시작했다. 정작 발화자인 대통령은 자신 발언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해괴한 광경마저 연출했다. 도무지 사과란 없다.
‘자유의 메신저(?)’ 박 장관이 수장으로 있는 문체부는 최근 공모전에 출품해 상을 받은 한 고교생의 작품에까지 발끈했다. 학생도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고, 건강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위해서는 ‘윤석열차’와 같은 풍자가 많아야 된다. 그러나 문체부는 장관이 주창한 ‘자유정신’에 걸맞지 않게 주최 측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정치 오염 운운하며 ‘엄중 경고’부터 날렸다. 공모전의 심사 기준과 선정 과정을 엄정하게 살펴보겠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이는 장관의 ‘듣기 싫은 것을 말할 권리’를 배반하는 것이자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해다. 또다시 블랙리스트를 연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박 장관은 ‘문재인 정부는 자유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라는 글에서 “자유 낱말은 밀려났다”며 “시련받는 자유다”라고 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을 인용한 “역사의 전진은 자유의 확장”이란 대목도 나온다. 그래서 되묻는다. 지금 우리의 자유는 시련받고 있지 않은가, 진정 자유의 확장은 이뤄지고 있는가, 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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