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기대 밑돈 ‘제의의 장’

시몬 리의 청동 조각 ‘브릭하우스’.

올해로 59회를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2022·4·23~11·27)를 찾았다. 꼬박 16시간을 날아왔다. 그러나 막상 둘러본 비엔날레는 기대에 못 미쳤다. 세계를 보는 관점은 다각적이지 않았고, 새로운 조형미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행사의 두 기둥인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 모두 그랬다. 다만 방향성만큼은 놀랍도록 뚜렷했다. ‘집요함의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거의 모든 작품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향했다. 바로 ‘여성’이다.

일단 본전시에 참가한 58개국 213명의 작가 중 여성이 90%를 차지했다. 과거엔 10~30% 내외에 불과했다. 여기에 베니스 비엔날레만의 특징인 황금사자상도 여성 작가들에게 돌아갔다. 영국관 대표작가 소니아 보이스가 국가관 부문을, 미국 작가 시몬 리가 본전시 부문을 수상했다.

흑인 여성 두 명이 나란히 황금사자상을 받은 건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이다. 이들은 5명의 흑인 여성 음악인의 발자취를 기록한 사운드 영상 작품과 흑인 여성의 정체성을 담은 청동 조각 ‘브릭하우스’로 큰 관심을 모았다. 시몬 리의 작품은 미국관에도 포진했다. 입구에 세워진 조각상 ‘위성’은 여성주의로의 자주권을 선언하듯 위풍당당하다.

국가관들이 자리한 자르디니 공원에는 또 한 명의 여성 작가인 카타리나 프리치의 거대한 ‘코끼리’가 들어섰다. 코끼리는 나이 많은 암컷이 무리를 이끄는 모계사회의 대표적 동물이다. 이 밖에도 캐나다의 타우 루이스는 여성의 노동과 역사적 연관성을 커다란 얼굴 형상으로 묘사했고, 쿠바의 벨키스 아욘은 신화 속 여성의 삶을 다룬 판화를 선보였다. 대체로 남성 중심의 담론 체계 전복과 관련이 있다.

이처럼 비엔날레는 그 자체로 여성 작가들이 펼친 제의의 장이었다. 물론 서구의 식민지 욕망과 폭력에 대해 언급하거나, 급속한 도시화의 경험과 소비주의를 문제로 삼은 작업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전’ 또한 주요 화두였다. 우크라이나관 작가로 참여한 파블로 마코프는 78개의 청동 깔때기를 통해 물이 흘러내리도록 한 설치 작품으로 민주주의 쟁취 과정을 시각화했다. 전쟁의 참상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운반했다. 40여명의 우크라이나 작가가 평화를 향한 예술적 연대를 외친 ‘우크라이나 광장’ 역시 비엔날레의 ‘반전’ 정서에 영향을 줬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성’을 내세우지만 정작 그 안에서도 편향성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전체 참여작가 중 아시아계 여성 작가는 여전히 소수에 머문다. 그곳에조차 주류는 따로 있는 셈이다. ‘반전’도 그렇다. 카페테리아 앞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광장은 먹고 마시며 즐기는 사람들 속에서 장식처럼 소비됐다.

‘꿈의 우유’를 주제로 한 본전시가 주체적 여성과 초현실로부터 현실에의 전환을 가리킨다면 국가관 전시는 각양각색, 밋밋함으로 정의된다. 저항의 의미로 나치 시대 증축된 건축물을 해체한 마리아 아이히호른의 독일관을 제외하곤 인상적인 공간이 드물다. 한국관도 마찬가지다. 기이한 동작을 반복하는 기계들은 화려했으나 국가관보다는 과학관이 더 어울릴 법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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