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문화권력 갑질’ 진실이 궁금해

 

지난 24일 국립현대미술관(사진) 공무원 노동조합은 최근 단행한 내부 인사 발령에 항의하는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논란이 된 성명서에는 인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특정 학예연구사들을 기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발령했으며,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단행되었다는 주장이 담겼다.

노조는 이번 인사 조치가 일명 ‘갑질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보복 차원으로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 앞서 노조는 지난해 말 ‘미술관 내부 간부들의 갑질 근절과 근로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한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 미술관 관장과 학예연구실장 등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을 접수받아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윤범모 관장은 노조 지부장과의 면담을 통해 내부 갑질 및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며 직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겠다고 했지만 불과 10여일 만에 이 같은 인사가 단행됐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것이 성명서를 내게 된 배경이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갑질 내용이다. 노조가 성명서와 함께 공개한 ‘국립현대미술관 기관장 및 학예실장 갑질 내용 요약’을 보면 ‘부당한 언행’ ‘비인격적 대우 및 차별대우’ ‘사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독단적 결정’ ‘결재권 갑질’ 등이 나열되어 있다.

‘갑질’의 구체적 사례도 적시했는데, 소위 민중미술을 했다는 사람과 사회예술을 한다는 사람이 핵심 고위층으로 있는 미술관에서 벌어진 일이라 심리적 충격이 크다.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 ‘무릎을 꿇어라’는 표현을 사용한 과도한 질책” “회의 및 보고 중 학예직 직원의 손등을 반복적으로 내려치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으로 인한 모멸감” “숙직 중인 여성 학예사에게 23시가 넘은 시간에 숙직실로 찾아와 대화 강요” 등이다.

노조 측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도 주장했다. 직원들을 모아 놓곤 “특정 대선 후보의 당선 가능성과 관련 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역설”하거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사업 우선순위를 ‘차기 청와대와의 협업’이라는 부적절한 기준에 근거해 결정할 필요성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공무원은 각각의 전문가로서 공익의 관점 아래 독자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 맞다. 정파적 특수이익을 고려한 반민주적 양태에 해당될뿐더러, 선거에 대한 공무원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향신문 등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술관 측은 이번 인사 단행에 대해 미뤄왔던 인사였을 뿐 “갑질 설문과는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윤 관장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과장·왜곡이 심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조가 없는 일을 지어내기라도 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익명성에 기댄 노조의 음해일까. 사안의 심각성과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라도 인사 과정과 인사 결정권자에 대한 문체부의 강력한 조사가 요구된다. 그리고 만약 노조가 공개한 사례가 실제일 경우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격권을 훼손한 문화권력은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최신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