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아이 웨이웨이’의 가운뎃손가락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2022·4·17)은 인권과 인간의 존엄한 삶, 표현의 자유에 관한 아이 웨이웨이의 가치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류에 날을 세운 채 살아온 작가의 인생 여정이 장르 간 경계 없는 조형으로 소개된다.

120여점의 출품작 중 대표작은 금빛 찬란한 벽지 설치작품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2015·사진)이다. 작품 속 다양한 이미지 중 수갑과 쇠사슬은 중국 정부에 의해 구금되었던 자신의 경험을 현재적 시점에서 재현한 것이면서 동시대 어디나 존재하는 유·무형의 탄압, 굴레를 가리킨다. CCTV는 감시 체제에 놓인 일상과 더불어 중국의 반체제·반정부 인사를 색출하는 데 이용된다는 의혹의 기호다. 트위터의 상징인 새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터넷을 검열 및 차단하는 중국 정부를 저격하는 장치다.

그러나 작품의 중심은 몸통에 차오니마(草泥馬)라는 글자가 새겨진 동물 알파카다. 중국에선 알파카를 차오니마라 부른다. 타인을 모욕할 때 사용하는 욕설 ‘차오니마’와 발음이 같다. 따라서 ‘라마처럼 보이지만…’은 통제를 일삼는 거대 권력을 향한 아이 웨이웨이식 풍자가 핵심이다. 속된 말로 ‘엿이나 먹으라’는 것이다.

동음이의어를 통한 비판적 행위는 작가에겐 ‘가운뎃손가락’으로 갈음된다. 그리고 가운뎃손가락은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 연작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톈안먼 광장을 비롯해 영국 국회의사당, 백악관 등의 전 세계 명소 앞에서 보란 듯이 손가락 욕을 날린다. 이는 권위에의 도전이자 강제성을 지닌 힘에 맞선 나름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폭압적 현실에 대한 반응인 그의 가운뎃손가락은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렇다고 욕설(?)로만 도배된 전시는 아니다. 2015년부터 쫓기듯 중국을 떠나 세계를 떠돌고 있는 작가는 인권과 난민에도 집요한 관심을 나타낸다. 그중 하나가 난민이 실제 사용한 구명조끼 140벌을 소재로 한 뱀 형상의 설치작업 ‘구명조끼 뱀’(2019)이다. 22m가 넘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난민 문제를 야기하는 것과 그들의 행방을 묻는다. 특히 난민캠프에서 수집한 옷과 신발로 만든 설치작품 ‘빨래방’(2016)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옷들에 내재된 사연과 시간은 형용하기 어려운 무게감이 있다.

서구사회가 주목할 만한 이슈들을 스펙터클하게 소비한다는 지적이 없진 않으나 아이 웨이웨이의 <인간미래>는 예술의 의미와 예술가의 역할을 환기토록 한다. 예술을 돈으로만 여기는 시대에서 필요하고도 시의적절한 전시다. 비록 국립미술관에서의 전시치곤 짜임새가 헐겁고, 익히 전시된 작업이 적지 않아 신선함이 떨어지긴 하나, 그럼에도 부패한 권력과 모순, 부조리,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와 정치를 대상으로 한 그의 가운뎃손가락은 꽤나 통쾌하다. 반칙과 내로남불이 판치는 한국의 상황을 대입하면 더욱 그렇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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