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환수해야 할 ‘몽유도원도’

얼마 전 막을 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공개된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면서 그 옆에 ‘몽유도원도’가 나란히 걸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봤다. ‘인왕제색도’ 한쪽에 가상의 이미지를 덧대는 것만으로도 심적 풍요로움이 가득 찼다.

 

하지만 당장은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몽유도원도’(사진)는 현재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건 복제품이다. 하늘의 이치를 알린다는 덴리교이지만 하늘의 순리를 저버린 채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관람조차 쉽지 않다.

 

‘몽유도원도’가 어떤 경로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이 약탈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주인이 명징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미술사에서도 보기 드문 미학적·학술적 위치만으로도 ‘몽유도원도’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마땅하다.

 

실제 ‘몽유도원도’는 당대 조형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서양 미학에 견줘 부족함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일례로 서양의 그림들은 보는 즉시 읽혀지는 것이었다면 동양의 미술은 해석하는 것이었다. 서양이 외적 리얼리티에 치중할 때 동양에선 사물의 내면을 파악하는 정신성과 수양을 기초로 한 관념성을 다뤘다. 이를 사의(寫意)라고 한다. 즉 대상의 본질을 중히 여기며 그 뜻을 그린다는 의미다.

 

사의는 한국의 회화를 규정짓는 큰 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줄기의 정점엔 조선 전기의 거장인 안견의 작품 ‘몽유도원도’가 있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1447년(세종 29) 4월20일 밤 꿈에 본 유토피아적 풍경을 들은 후 3일 만에 그렸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본 것은 아니나 인간의 욕망과 바람, 충의를 버무린 ‘마음과 정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전한 유토피아를 높은 격조로 상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몽유도원도’는 정면과 측면, 부감법이 혼용된 다시점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근현대를 통틀어 서양보다 수백년 이상 앞선 시각예술기법이다. 사물에 담긴 매개적 표현 또한 뛰어나, 복숭아꽃에 신선의 세상과 안락한 사후적 의미를 세련되게 담았다.

 

그림의 맨 왼쪽에는 안평대군이 직접 쓴 발문이 있다. 박팽년과 최항, 신숙주 등 당대 내로라하는 20여명의 고사(高士)들이 쓴 20여편의 찬문도 새겼다. 이 친필들은 그 내용의 문학적 성격은 물론, 조선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외에도 ‘몽유도원도’의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조선 후기 ‘인왕제색도’와 더불어 근현대를 잇는 문화사적 고리임을 명확히 가리킨다. 이제라도 국가적 차원에서의 환수방안을 찾아야 한다. 일본을 자극한다는 따위의 변명은 가당치 않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