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참으로 괴이한 미술풍경

 
아트바젤홍콩 전시장면. 2019

‘오픈런(open run)’을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강원랜드다. 도박장 문이 열리는 아침만 되면 수백 명이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뛴다. 슬롯머신이나 카드게임을 할 수 있는 테이블에 먼저 앉기 위해서다.

미술계에도 오픈런이 있다. 바로 미술품을 사고파는 장터인 아트페어다. 이곳에서도 전시장 내 마련된 갤러리 부스를 향해 줄달음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난해 개최된 한국국제아트페어와 서울아트페어는 물론 지난 20일 막을 내린 화랑미술제에서도 오픈런은 재현됐다.

하지만 이는 한국만의 괴이한 미술풍경이다. 해외 어느 아트페어를 가봐도 그림 사겠다고 단숨에 내처 달리는 이들은 거의 없다. 차분히 입장해 관람할 뿐 양손에 VIP카드와 지갑을 쥔 채 필사적으로 질주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별나고 괴상한 장면은 또 있다. 바로 ‘텐트 노숙’이다. 근래만 해도 한 신진 작가의 작품을 사기 위해 모 갤러리 앞에는 개관 전날부터 수십 개의 텐트가 들어섰다. 아직 제대로 된 미학적·미술사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노랗고 심심한 화면에 꽃과 항아리를 그린 40여점의 정물화는 아침나절 모두 판매됐다.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상품 등을 구입하기 위해 경쟁하듯 내달리는 현상을 빗댄 오픈런과 그림 사겠다고 밤샘 노숙까지 불사하는 위와 같은 광경의 이면엔 ‘돈’이 있다. 지금 그림을 사두면 훗날 상당한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든 결과다. 그러나 예술성에 대한 인정과 미술사적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작품은 돈이 되지 않는다. 예술은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이면서 가치를 우선하는 세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술의 가치는 국내외 국공립미술관 및 주요 사립미술관에서의 검증과 시대성을 반영한 비엔날레에서의 경험, 비중을 지닌 창작공간에서의 활동, 주요 수상이력 등이 고루 반영되어 완성된다. 전문비평가들의 판단도 중요하다. 시장에서의 성과는 가치매김에 극히 일부 기여할 뿐이다.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들은 미술시장의 거품이 가라앉아도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작가 작품은 그때만 반짝하고 이내 사라진다. 단군 이래 가장 활황이었다는 2007~2008년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미술시장에서 주목받았던 작가 중 다수는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활동하는 일부 작가의 그림 값도 예전만큼은 아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이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미술시장의 속성엔 아랑곳없이 그들이 내놓는 ‘시장미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잘 팔리는 작가를 곧 실력과 가능성을 갖춘 작가로 착각하는 것도 모자라, 비싼 것과 가치마저 동급으로 여긴다.

돈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 역시 예술적 성취를 화폐 단위로만 환산하는 언론과 뭐라도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만든 착시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껍데기만 화려한 그림을 구입하는 줄도 모른 채 달음박질에다 노숙까지 해댄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최신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