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이해 못할 ‘이건희 기증관’ 서울 입지론

물방울 모양의 일본 테시마 소재 ‘물의 미술관’.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문화예술을 향유하려는 세계인의 명소이다.ⓒ홍경한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 송현동과 용산 부지를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하 이건희 기증관) 건립 후보지로 압축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지역 균형발전과 문화분권을 내세우며 기증관 유치에 공을 들인 지자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통해 한국의 잃어버린 근대사를 복원할 수 있길 고대했던 미술계도 성명을 내며 정체불명의 통합전시관 건립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요지부동이다. 단 한 번의 공론화 과정조차 없이 결정된 후보지를 놓고 전국이 들끓고 있지만 현직 정부 산하기관장과 행정부 요직에 있던 이들 다수로 구성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를 방패삼아 발표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문체부가 유독 금과옥조로 삼는 문화향유 극대화를 위한 접근성이 정말 중요하냐는 것이다. 지방발전보다는 국익이라며 마치 지역에 미술관을 세우면 국익을 해친다고 여기는 듯한 황희 장관의 발언이나, 장소 상관없이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해 우리 역사의 공백을 메우자는 미술계의 바람을 마이동풍처럼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불변의 기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물리적 상태로서의 접근성과 문화예술 향유는 큰 연관이 없다.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지구촌 곳곳엔 뜻밖의 자리에 세워졌지만 특성화된 콘텐츠와 전문적 체계 아래 분류된 독자성으로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박물관·미술관이 수두룩하다.

 

일례로 미국 매사추세츠 현대미술관은 노스애덤스라는 작은 동네 산속에 있으나 한 해 20만명에 달하는 방문객이 찾는다. 호주의 섬 태즈메이니아에 둥지를 튼 뮤지엄 오브 올드 앤드 뉴 아트도 접근성 면에선 거의 최악이다. 그럼에도 현대미술을 다루는 과감한 실험 방식으로 호바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메마르고 척박한 북극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현대예술센터처럼 세계 각지엔 산간벽지임에도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관람객들이 아침부터 줄서 입장을 기다리는 공간이 드물지 않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문화예술 향유 확대 차원에서라도 접근성이 좋은 서울에 기증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문체부의 ‘서울 입지론’은 근거가 빈약하다. 근거가 허하니 명분도 떨어진다. 따라서 문체부는 지금이라도 이건희 기증관 설립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옳다. 또한 재검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광의적 토론과 논의의 절차를 반드시 밟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신뢰한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입지를 결정한다면 지역 갈등과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