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남단의 마라도나 우도에 비해 가파도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이다. 제주도에서 배로 10여분이면 닿는 거리지만 내 생각엔 아마존만큼이나 멀고 신비한 곳으로 여겨졌다. 섬을 자주 찾아다니지 않아서일 것이다. 젊은 시절에 배 멀미를 심하게 한 경험 탓도 있지만 섬은 갇혀 있는 공간이란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매일 움직이고 있는 나의 공간은 참으로 협소하고 한정적이면서도 섬을 갇힌 공간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우습기 짝이 없다.
어느새 가파도에도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었다.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후 저녁 들판에는 휘파람소리 같은 것이 지나가고 있었다. 축구장 크기만 한 섬에서 들판이라며 눈을 주다가 마주치는 곳이 바다이기에 청보리와 갯무밭의 낮은 언덕에서 바람 소리가 그렇게 들리고 있었다.
키 큰 나무도 없고 높은 건물이 있을 리 없는 들판에 돌담으로 켜켜이 쌓인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다. 돌담 위로 조심스레 솟아오른 낮은 지붕은 주인의 개성대로 푸르고 붉고 연보릿빛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가파도의 돌은 제주도의 현무암과 다른 조면암으로 약간 동글동글하면서 자줏빛을 띠기도 한다. 화산 폭발이 제주도 본섬보다 먼저 일어 난 곳이라는데 식수가 풍부해서 사람살기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 이곳의 모든 것들이 낮게 속삭이는 이유가 이 섬의 매력인 것 같다. 언제 불어닥칠지 모를 태풍에 대비해서 풀잎도 낮게 흔들리며 돌담들도 포복하는 자세로 자리하고 있다. 앞다투어 솟아오른 도시의 것들만 바라보다가 자연 앞에서 스스로 몸을 낮추는 이 낮은 것들의 자세가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인다.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