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고객 갑질 이제 그만

노동자들이 힘든 건 육체보다 감정이 상할 때다. 특히 주로 감정을 ‘팔아서’ 일하는 이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식당 업주도 감정노동을 한다. 늘 웃어야 하고, ‘고객님’의 요청을 최대한 받들어 모셔야 한다. 이 무한경쟁의 식당 세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물건과 서비스를 팔고 돈을 받는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적당한 ‘교환’인지 헷갈린다. 고객님이 ‘갑질’을 심하게 해도 당하고 산다. 입길에 오르기 두려워서다. 한 후배는 강남에서 양식당을 한다. 처음 온 손님이 “나를 몰라보느냐”며 집기를 던지고 옮겨 적을 수도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지금도 부들부들 떨린다고 한다.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증세도 생겼다. 손님의 폭언은 이 동네에서 그다지 듣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식당 노동자들은 그렇게 조금씩 무너진다. 사소한(?) 일들도 참 많다. 식당마다 찻숟가락이나 작은 포크 같은 기물이 없어지는 건 다반사다. 손님이 자리를 뜨면 없어진다. 그렇다고 가방을 뒤질 수가 있겠는가. 뷔페식당에 ‘락앤락’ 통을 가지고 와서 음식을 넣어가는 사람도 있다. 보온병에 커피도 담아간다고 한다. 뷔페는 ‘배’ 말고 어떤 용기도 지참할 수 없는 게 불문율 아닌가. 물론 극히 일부의 일이다. 그래도 한 건이라도 벌어지면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

 

 

카페가 많아졌다. 이 동네도 스트레스가 심하다. 커피를 한 잔만 주문한 후 리필해서 친구와 나눠 먹는 손님도 있다. 카페도 먹고살아야 한다. 1인 1주문은 기본이다. 하루종일 자리 차지하는 이들도 있다. 물건 놔두고 점심 먹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밖에서 음식 가져오면 안된다고 해도, 케이크며 김밥과 순대까지 꺼낸다. 케이크는 그 카페에서도 파는데 말이다. 홀 서버로 몇 년을 일한 후배는 아예 이 직업을 접었다. 하도 성희롱을 당해서다. 국립대학 학장이라는 자가 스무 살짜리 여자 서버의 엉덩이를 만지는 일도 있었다. 한번은 아주 유명한 가수의 아비란 자가 한 와인바에서 서버를 더듬었다. 나도 현장에서 그것을 목격했다. 아무 말도 못한 내가 부끄러워서, 나는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왕년의 포스코 왕 상무 사건이나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태 같은 갑질은 유명한 항공사니까 그나마 널리 알려졌다. 작고 힘없는 식당과 카페에서는 더 한 일이 벌어져도 공론화되기 힘들다. 사고가 난 후, 손님의 일방적 주장을 담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글에 대해 방어권도 거의 없다. 섣불리 변명했다가는 익명의 누리꾼들의 십자포화를 맞기 십상이다. “그럴 만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요?” 이런 시각이 있다. 게다가 이쪽에서 일하는 이들은 각종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끙끙 앓는다. 노조도 없고, 업종 단체는 유명무실하다. 국내 업종별 노동자 숫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게 요리사와 서버다. 숫자에 걸맞은 어떤 연대도 교육도 없다.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도 관련 공약을 내지 않았다. 암담하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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