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남자들이 요리한다

코로나 시대가 가져다준 몇 가지 흥미로운 변화들이 있다. 집에서 더 많이 요리하고 배달이 많아진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요새는 이른바 백신쿡이라는 게 있다. 백신을 맞고 며칠 쉬는 동안 요리 해먹을 궁리, 만든 요리에 대한 감상과 자랑(?) 또는 실패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많이 올라온다. 과거에 ‘아빠는 요리사’라는 식의 가족 행복 취향의 분위기가 사회에 퍼져나갔다. 20여년 전쯤의 일이다. 요리교실에 아빠들이 등록하고 배우는 일이 뉴스가 되어 보도되곤 했다. 하지만 보도가 좀 앞서나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사회는 늘 의제를 만들고 다함께 영차영차 밀고 가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의 요리도 그랬다. 평등하게 의무를 나눈다기보다는 좋은 아빠, 남편의 바람직한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는 형편에 요리가 끼어들었다고나 할까.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요리를 먹고 평하는 데서 나아가 이제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매우 자발적이며, 전문적이다. 물론 이것은 넓게 보면 기혼자들의 현상만은 아니다. 이런 것이 가능해진 데는 몇 가지 이유를 짚을 수 있다. 하나는 코로나 영향에 따른 밀키트 상품 증가다. 간단한 몇 가지 조합(?)을 통해서 요리가 탄생한다. 그것도 미쉐린 별을 달고 있는 식당의 제품도 만날 수 있다. 사실, 요리란 재료를 다듬고 만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불’을 써서 지지고 끓이는 걸 요리라고 생각하는 대중들의 취향에는 밀키트만 해도 요리인 셈이다. 물론 그걸로도 충분하다. 다른 하나는 유튜브의 영향이다. 오늘 저녁 당장 고든 램지의 스테이크나 또는 평생 살아도 가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탈리아 시골 땅의 할머니가 만드는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다. 아니면 시중에서 늘 맛있게는 먹지만 집에서 흉내내 보면 도저히 맛이 안 나오던 제육볶음, 고깃집 된장찌개도 만들 수 있다. 밀키트와 유튜브는 남자들에게 요리에 눈을 뜨게 해준 듯하다.

여러 인류학 연구를 보면 요리는 여자의 몫이었던 것 같다. 수렵 채집 시대에는 더욱 그랬다. 근육이 강한 남자들이 수렵에 나서고 여자들은 채집 생활로 기본적인 식량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요리도 수행한 걸로 보인다. 여자들은 수유를 포함한 육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거주지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도 그랬다. 남자들이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게 된 것은 요리사라는 직업이 탄생한 후 생업으로 시작했다고 본다. 드라마 <대장금>의 스토리와는 달리 실제로 궁중의 요리는 대부분 출퇴근하는 남자 요리사들이 했다. 다만 남자들이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을 뿐이다. 남녀 역할의 분담, 유교의 영향, 노동시장의 구조가 그런 사정을 뒷받침했다.

남자들이 요리하는 것은 오랫동안 굳어졌던 노동시장, 가족 형태의 변화를 알리는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 어쨌든 이제 남자들의 가정 요리가 대세라는 점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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