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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24) 김다은 - 사서함 100호의 주인에게

김다은 ㅣ 소설가

 

유언장은 아니지만 마지막 편지라고 여겨질 절실한 편지를 써달라는 요청에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십수년 동안, 귀한 편지들을 받아왔지만 차마 답장을 하지 못한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당신은 항상 사서함을 통해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주소지는 청주·안동·전주·안양 등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더구나 당신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었는데, 사서함 100호는 수많은 당신들의 대표 사서함 번호로, 제가 선택한 임의의 주소입니다.

 

처음에는 편지를 매우 간헐적으로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잦아져 몇 주에 한 통, 급기야 서로 다른 도시의 서로 다른 당신으로부터 같은 날 편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편지가 가장 많이 밀려온 때가 공지영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출간되고 2006년 동일한 제목의 영화가 나온 이후가 아닌가 합니다. 교도소를 드나들며 한 남자 사형수의 애환을 들어주는 소설 여주인공이 ‘여교수’임을 깨닫고야, 제가 수신자로 선택된 이유가 짐작되더군요.

 

소설가 김다은 ㅣ 출처:경향DB

그동안 답장 편지는 전혀 쓰지 못했습니다. 고작 원하는 제 책들에 사인을 해서 보내주는 정도였지요. 글쓰기에 도움이 돼 달라는 또 다른 당신께도 전혀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했지요. 시인 이승하씨처럼 정기적으로 교도소로 찾아가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속의 남자 사형수가 체험하는 그런 감정적인 교감을 원하는 편지에 대해서도 차마 답장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고 편지 쓰기 캠페인을 상당 기간 해왔습니다. 진심이 담긴 당신의 편지에 회신을 보내지 못하는 제 자신의 한계를 보면서 가슴이 무거웠지요. 사서함을 통해서 왔기 때문이거나 얼굴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무수한 사서함 편지들이 사실 전부 남성의 것이어서, 그 다음에 감당해야 할 인연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작가로나 편지 모임 주도자로서는 참으로 소심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지요.

 

답장을 보내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에, 최근 사서함을 통해온 동일 발신자의 두 편지도 뜯지 않고 있었습니다. 두 달 사이에 세 번째 편지를 받고야, 저는 한꺼번에 세 통을 뜯었습니다. 교도소가 있는 도시의 주소, 사서함, 태극기가 그려진 우표, 굵은 가로줄 편지지, 십수년의 경험과 예민한 작가의 감각으로는 역시 교도소에서 나온 편지가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내용이 전혀 뜻밖의 것이었지요. 첫 편지는 한 남자가 여덟 마리의 닥스훈트를 기르며 그들과 함께 떠난 여행을 여러 장에 걸쳐 쓴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편지에서는 저에게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면서 ‘너무 길지는 않게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었고요. 세 번째 편지는 같이 언제 여행을 떠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수년 전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태양의 남쪽>이 떠오르더군요. 교도소에 수감된 남자(최민수)가 자신의 처지를 숨기고 바다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여주인공(최명길)에게 써서 보내던 장면 말입니다. 혹여 제 얄팍한 판단력으로 당신의 처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용서하십시오. 사실 당신의 여행기가 산낙지처럼 생생해서 제가 실수하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길게 편지를 쓸 수 있는 당신은 분명 풍요로운 분일 것입니다.

 

사서함 100호 주인이시여! 무엇보다도 여행에의 초대를 담은 낭만적인 편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각한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의 동행자가 필요해서 초대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여행을 같이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헛된 자존심을 세우려는 피상적인 거절이 아니니 마음 상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여행에 초대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없지 않습니다. 하물며 세계적인 고전 작품들 속에서 왕도 예외 없이 거절당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니 말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거절할 수 있으니 더욱 빛나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보내는 첫 편지이자 마지막 편지가 지면을 통해 읽힐 때쯤,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