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노래와 세상]안개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김승옥 ‘무진기행’ 중)

 

미세먼지 때문에 안개조차도 반갑지 않은 시절이다. 그러나 안개를 소재로 한 노래들은 여전히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우연의 일치로 안개를 노래한 대표곡들이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자인 이봉조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현미의 히트곡인 ‘밤안개’(1962년)는 이봉조가 냇 킹 콜이 불러 유명해진 ‘It’s a Lonesome Old Town’을 번안한 노래다. 유부남이었던 그는 이 곡으로 스타가 된 현미와 결혼했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정훈희가 불러 크게 히트한 ‘안개’(1967년)도 이봉조의 곡이다. 남성 사중창단 쟈니브라더스가 먼저 불렀던 미완성곡을 보완하여 당시 여고 1학년이던 정훈희에게 부르게 했다. MBC 라디오 박진현 PD가 가사를 썼다. 정훈희는 이 노래로 팝스타일의 창법을 구사하는 신인 여가수로 주목받으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김수용 감독은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안개>를 만들면서 이 노래를 주제곡으로 썼다. 영화 속에서 정훈희의 노래에 맞춰 윤정희가 립싱크했다. 정훈희는 도쿄국제가요제(1970년)에 참가해 ‘안개’를 열창하여 ‘월드 베스트10’에 입상했다. 이 대회에 혼성그룹 아바가 참가했지만 입상권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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