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집콕 당한 영화 <올드보이> 주인공의 심정이 어땠는지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민 모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정형적이던 집 공간에 대한 모두의 인식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온라인 세계의 확장과 더불어 재택근무를 하고, 학교 수업을 듣고, 운동을 하고, 배달을 통해 유명 레스토랑 음식을 즐기고 심지어 콘서트장으로 변하는 다기능화되는 집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각종 채널은 집방 프로그램들로 채워짐으로써 새로운 주거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바람직하게도 집이 우리에게 부동산이라는 교환가치에서 점차 삶의 질을 형성하는 정주가치 중심으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오랜 기간 수많은 건축가들이 창의적인 공동주택 설계안을 통해 소유하는 집이 아니라 함께 삶을 즐기는 집을 역설하였으나 아무래도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설득력은 없었던 것 같다.
근대 이후 집은 서양처럼 목적에 따라 방이 구분되었으나 다시 우리 고유의 집과 같이 사용자의 행위에 따라 보다 유연하고 다기능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간 곳곳에 개성을 담으려는 시도가 부각된다. 가장 보수적인 아파트 평면도 거주자의 특성을 담을 수 있는 알파 룸이나 가족 구성에 맞춘 가변적인 평면 구성은 기본이다. 이제까지 발코니는 실내 면적 확장의 대상이었으나 다시 자연과 교감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래된 한 장의 건축 스케치는 눈길을 사로잡는다(그림). 단독주택을 마당과 함께 층층이 쌓아 만든 고층 아파트는 마치 수직마을을 연상시킨다. 이 구상은 건축가가 아닌 한 만화가에 의해 1909년 미국의 저명한 라이프지에 게재되었다. 이것은 당시 등장한 철골 기술을 토대로 마천루의 이상적 형태를 묘사한 상상도이다. 가늘고 경쾌한 철골 기둥에 의해 원래 땅의 크기와 같은 각 층 바닥면이 84개 층 높이로 증식되어 층마다 다채로운 집과 마당이 함께 들어서 있다.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집에 대한 해답은 전통 주택이나 수직마을과 같이 모두 과거에 나와 있으나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일까.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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