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19세기 시카고의 ‘마천루’ 시대를 개척한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근대건축의 막을 연 슬로건이다. 볼품없는 디자인에 대해 ‘기능을 충실히 따랐다’는 변명으로 오늘날까지도 매우 유효한 이 말은 그의 시대에 일반적인 생각을 뒤엎는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건축의 형태는 그 용도와는 상관없이 고전적인 양식을 복제해 만들어졌다. 건축은 단순히 요구된 용도(Use)의 살들을 나열하여 고전 양식으로 얼마나 기품 있게 덧붙이는가가 중요했다. 기능(Function)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리번 이후 비로소 건축가들은 용도를 넘어 기능이란 개념을 통해 사용자가 특정 방식으로 건물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생각은 복잡 다양한 인간 행위의 분해와 조합을 통해 우리 생활을 기능적으로 조직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관계나 사회는 기능이나 효율성에 의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지속 가능한 관계도 결코 편리함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능 우선주의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우리는 그간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상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집을 예로 들면 침실, 거실, 식당, 서재는 각각 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소파나 침대, 식탁, 책상으로 채워져 우리의 행위와 삶을 엄격히 규정한다. 반대로 옛날 우리의 집의 단위는 방이 아닌 영역의 개념이었다. 안방, 아랫방, 건넛방처럼 기능이 아닌 관계에 따라 명했다. 방에서 사용자는 밥상을 가져와 식사를 하고, 탁자를 펴서 공부를 하고, 침구를 깔고 잠을 잤다. 또 방들의 중심에 휑하니 비워진 마당은 서구의 정원과는 달리 필요에 따라 가사노동, 놀이터, 제의 등 다양한 공동적 행위들로 채워졌다. 집의 형태조차 완결적이지 않고 오랜 시간을 두고 덧대고 증축하며 그래도 모자라면 옆에 새로 한 채를 지어도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는다.
오늘날 ‘지속 가능성’은 ‘환경’이라는 말과 함께 세계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즐겨 쓰는 말이다. 하나 그것을 에너지 측면에 국한시키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보다 사회적, 경제적 의미로 확대되어야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러한 끈을 연장하면 끊임없이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기능하며 꾸준히 사회적 가치를 생성하게 하는 열린 행위의 건축이 가장 지속 가능한 것이다. 형태는 창의적 행위를 유발해야 한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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