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문화의 편의점

문화적 편의점을 주제로 계획한 광탄 도서관은 주변에 경계가 없어 마을장터처럼 놀이와 문화, 어울림이 공존하도록 하였다. 길 쪽으로 열린 큰 공간은 벽이 없어 다양한 목적의 공간들이 교환 가능한 형태로 펼쳐진다.

 

지난 88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편의점은 국내에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어느덧 30년이 흐른 오늘 점포수는 전국에 4만7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일상에서 편의점은 초기 24시간 열려있는 단순한 쇼핑공간에서 점차 다양한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진화하였다. 그것은 도시의 주방이자 약국, 주점, 식당, 서점, 은행 역할을 망라하며 급증하는 1인 가구 중심의 일상생활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편도족’이니 ‘모디슈머’와 같은 문화적 트렌드도 시대적으로 생겨났다. 편의점의 공간적 특성은 생활공간에 인접한 접근성, 내용물의 다양성, 사물들의 관계가 수평적인 상호교환성, 그리고 도시 구석구석 분포된 네트워크성이다. 이러한 특성들이 단순히 상업적 기능을 넘어선 공공이나 문화에 적용된 편의점과 같은 새로운 건축을 상상해본다. 도서관, 미술관, 공연장, 문화센터가 관습적인 형식을 표방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 끝났다. 벽에 걸린 그림이나 서가에 꽂힌 책은 더 이상 절대적인 콘텐츠가 아니다. 다양한 사물인터넷과 스크린으로 확장되는 미디어들은 위계를 가지지 않고 편의점의 상품처럼 평행하게 배열이 되어 모디슈머의 그것과 같이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과 필요에 맞추어 문화적 콘텐츠를 조합하고 변형하며 주체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더 이상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문화센터와 같은 구분은 존재하지 않고 통칭 생활문화 편의점으로서 다양한 공공을 위한 문화기능들이 병렬로 늘어선 건축이 될 것이다. 그런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관계, 사람과 내용의 관계도 중심이나 위계질서 없이 모두 병렬로 평행하다. 일반적인 공공건축은 늘 일차원적인 기능을 토대로 분절된 공간을 요구해왔다. 기능만이 아니라 때로는 소리와 시야도 관리의 측면에서 차단되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점차 각 공간은 불투명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유리벽이 좋고 막힌 벽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위아래 그리고 앞뒤로 보다 각각 방들 사이에 소통하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편의점으로서의 새로운 공공건축은 도시의 중심에 우뚝 솟은 것이 아니라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가까이 놓여 밤늦게까지 열려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것들 각각의 규모는 작지만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쉽게 연결되어 자기 완결적이지 않으며 확장성을 가지고 우리 일상을 풍요롭게 채울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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