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떳떳한 거래를 하는 진짜의 세계


윤종빈 감독의 영화 세계는 유사 가족의 재해석이다.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 진짜 형제와 가짜 형제. 한국형 누아르, 갱스터 영화는 브라더, 형님, 아버지, 누님과 같은 유사 가족관계로 위장한다. 카르텔에 비유되는 권력 조직 대개가 그렇다. 조직폭력배나 깡패 집단만 그런 게 아니다. 힘 많은 합법적 권력 집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남이가’ 정신 아래 형, 동생, 형님, 아우, 아버님, 어머님, 누이, 동생 등의 끈끈한 비밀 결사로 묶이는 것이다.

어둠 속에 눈먼 이윤이 많을수록 더 끈끈해진다. 유사 가족관계는 사실 어떤 의리도, 충심도 없다는 의심의 가림막이다. 유사 가족의 이름으로 오염을 덮어 주는 관계, 윤종빈은 이 더러운 위장막을 한국 사회 구조의 핵심으로 본다. 그 더러운 끈끈함이 한국 경제를 이만큼 빨리 끌어 올리기도 했지만 얽히고설킨 유착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저해하기도 한다. 명찰을 떼고 보면, 누가 깡패인지, 공무원인지, 검사인지, 국회의원인지, 기자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는다. 금융, 법조, 언론 등 힘 있는 집단을 카르텔이나 마피아에 빗대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은 것도 아이러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종빈 감독의 <수리남·사진>은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 진짜 가족과 가짜 가족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평범한 가장이 희대의 마약왕을 잡는다.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윤종빈을 통해 그럴듯하게 재현된다. 1부가 강인구(하정우)라는 인물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 바쳐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는 14세부터 혈혈단신으로 맞부딪히며 세상을 실전으로 배운 사람이다. 밥을 굶지 않으려 유도부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몸 쓰는 법을 배우고, 미군 부대 납품을 하다 생계형 영어를 배우고, 술장사하다 공무원들 비위 맞추고 진상 손님 다루는 법도 알게 된다. 자동차학과를 다니지 않았지만 카센터 주인이 되고, 연애를 해본 적은 없지만 결혼도 한다.

슈퍼맨 영웅담처럼 허황돼 보이지만 돌이켜 보면 1980년대 많은 아버지들이 그랬다. 어깨 너머 차수리를 배워 수리공이 되고, 죽기 살기로 양파 썰어가며 중화요리 기능장이 되던 시절엔 생계형 아마추어가 진짜로 거듭나곤 했다. 오히려, 늘 등장하는 악당 전요환(황정민)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능력자, 사기 캐릭터 아닌가? 배운 것도, 기술도 없는 전요환이 한국 필로폰 유통의 1인자가 되고, 국가 존엄의 이름을 팔아 대규모 사기극을 벌이는 건, 개연성이 있나? 배운 것도, 끈도 없는 전과자가 범죄자 인도 조건이 없는 나라를 찾아가 그곳의 반군 지도자와 손잡고 마약왕으로 군림하는 건 또 말이 되는가?

둘 다 평범을 넘어선 인물이긴 하지만 차이점은 단 하나, 강인구가 자신의 진짜 가족을 지키려 한다면 전요환은 허상의 아버지라는 점이다. 허상의 아버지는 타인의 희생만을 요구하며 감당치 못할 피값을 대가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폭군이다. 전요환은 돈을 벌기 위해 신도 팔아먹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전요환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현대사에 자주 등장했던 가짜 아버지, 독재자들의 모습 아니었던가? 자유, 평화, 국가, 평등처럼 멋진 이데올로기를 팔아먹으면서 흠을 가리고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가짜 아버지, 그게 바로 유사 가족관계를 파는 권력자들의 진짜 모습이다.

전요환은 성경의 말씀을 자신의 율법으로 유용해 필요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다. 신의 말은 그에게 수단에 불과하다. 유사 가족관계를 주장하는 가짜 아버지, 가짜 형님들은 늘 법과 질서, 의리와 가치를 강조한다. 그에게 가족은 수직관계이며 명령복종의 상하관계일 뿐이다. 군부독재시절 독재자의 심경을 건드린 자가 빨갱이로 몰렸다면 &lt;수리남&gt;에서 전요환을 빗나간 자는 ‘사탄’이라 불리며 처단된다.

법이라는 게 어디서나 공평무사하고 공정할 것 같지만 적용하는 권력의 주체에 따라 저울의 추가 오가곤 한다. 누군가에겐 엄격한 잣대가 누군가에겐 한없이 너그럽기도 하다. 내 편에 너그럽고, 타인에게만 엄격한 법이라면 그건 정의가 아니다. 그건 법을 참칭하는 가짜의 세계일 확률이 높다. 

<수리남>의 강인구는 돈을 법처럼 따른다. 사업가니까 돈으로 이야기하자, 거래가 가능하다면 뭐든 융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만 보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버지로서의 떳떳함 즉, 진짜 아버지이다. 강인구에겐 수평적 관계인 친구도, 아내도 있다. 자유니 정의니 거창한 빈말은 거래 불능의 허상에 불과하다. 윤종빈 감독의 슈퍼맨은 두 아이, 아내, 친구에게 떳떳한 아버지, 남편, 친구이다. 그렇게 떳떳한 거래를 하는 사람, 그게 바로 진짜 슈퍼맨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연재 |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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