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아카데미에서는 다양성을 갖춘 영화만이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있다.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이를테면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참여 여부가 작품상 후보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배우처럼 눈에 띄는 영역뿐만 아니라 스태프, 마케팅 홍보와 관련된 외적 영역과 영화적 묘사나 주제까지 살핀다.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영화는 점차 아카데미에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다양성과 관련된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일종의 면세 혜택을 누려왔다. 유색인종지수가 워낙 높다 보니 다른 항목에 대한 점검은 면제되었다. 아카데미의 기준을 한국 영화, 드라마에 적용하자면 여러 부분에서 걸린다. 2022년 화제작들만 살펴봐도 그렇다. <범죄도시2> <한산> <수리남> 등 한국의 블록버스터 대중 서사들은 대개 남성 중심적이다. 올해 화제작을 <헤어질 결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작은 아씨들·사진>로 확장하면 그나마 다양성이 확보된다. <오징어 게임>이 프라임타임 에미상을 받고, <기생충>이 아카데미, 칸의 주요 부문을 휩쓸 만큼 한국의 영화, 드라마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남은 숙제도 많다.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된 <수리남>과 <작은 아씨들> 소동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수리남>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허구다. 실존 인물 K가 실제 국가인 수리남에서 겪은 일을 토대로 하긴 했지만 드라마 <수리남>의 상당 부분은 허구이다. 홍어 수출도 그렇고 영화 속 차이나타운도 윤종빈 감독의 상상에서 출발했다. 시작은 실화였을지 몰라도 결과물은 허구다. 그러나 마약과 수리남은 그 연관성이 오히려 사실과 무관하지 않기에 급기야 외교적 마찰이 일 뻔했다.
<작은 아씨들>에 등장했던 베트남 파병 문제도 그렇다. 드라마 전체를 보고 나면 베트남 파병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읽을 수 있지만 대사 한 줄 한 줄만 보자면 베트남 시청자가 느낄 불편감을 부정하긴 힘들다. 허구적 거리만큼 떨어진 대한민국의 관객에게는 덤덤할지 모르겠지만 역사의 일부로 겪은 당사자들에게는 결코 무감할 수 없는 장면과 대사들이었던 셈이다.
표현에 있어 자유는 늘 보장되어야 한다. 창작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결코 침범받을 수 없는 절대적 영역이다. 그러나 표현이란 발화이기에 늘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상대 없는 대화는 무용한 혼잣말이며 잠꼬대에 불과하다. 대화는 청자가 있을 때 완성된다. 그렇다면 표현은 언제나 듣는 상대를 고려해야만 한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영화나 드라마, 문화콘텐츠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화적으로도 역시 청자 그러니까 시청자와 관객에 대한 이해 즉, 존중이 필요하다.
한국의 관객과 시청자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내수용일 때, 창작자들은 서사소비자인 관객과 시청자의 반응을 매우 예민하게 예측하고 또 그에 반응하기도 한다. 코로나19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확산 가운데서 우리 드라마, 영화 서사는 세계의 다양한 요구와 마주하게 되었다. 급성장의 청신호 속에서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다양성, 올바름, 표현 수위의 성숙도까지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건 이 표현의 자유를 악용하는 정치권과 행정가들이다. 정치인들 특히 공적 자리를 차지한 공인들의 발언기회와 권리는 차고 넘친다. 표현의 자유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함부로 억압할 수 없도록 보장하는 울타리가 포함되어 있다. 법을 만들고, 시행하고, 말 한마디로 제도를 만들고 바꾸며 인사, 연봉, 승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이 무슨 표현의 자유 타령인가? 그들이 내뱉는 폭력적 언어는 오히려 제대로 제어된 적 없어 한 번도 정제되지 못한 독단적 신념일 뿐이다.
세상이 그 말을 기다리며 들어주고 그래서 그 말이 실행력을 가질수록 표현의 자유보다는 그 표현으로 인해 파생될 영향력은 점검받고 감시받아야 한다. 발언권이 주어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금도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기 신념이랍시고 표현의 자유를 남발하면 그건 자유를 가장한 혐오다. 정말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매일 매일의 질문을 듣고 성실히 대답해야 한다. 문화예술계에 어줍잖게 표현의 자유를 가르치지 말고 말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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