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되면 이곳저곳에서 보내온 연하장으로 e메일이 가득 채워진다. 요즘처럼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염려스러운 때는 특히 해외의 무용단체나 무용극장 소식에 한번 더 눈길이 간다. 비록 몸은 가지 못해도 마음만은 그들의 작품과 함께하고 싶으니 말이다.
최근 받은 연말 카드 가운데 영국 새들러스 웰스 극장의 메일에 링크된
2020년 글로벌 갈라 영상(https://youtu.be/gIolgHlH_Ss)을 소개한다. 글로벌 갈라엔 영국의 국민가수 스팅을 비롯해 극장의 대표적 아티스트 24명이 각각의 생활 터에서 이 시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는 모습과 춤추는 짧은 영상이 담겼다.
풀밭 언덕에서 흩날리는 눈을 애써 잡아 양철통에 넣으려는 중년 남성은 컨템포러리 발레의 거장 윌리엄 포사이드였다. 처음 영상을 볼 때는 평범한 겨울옷과 모자, 장갑까지 낀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손에 잡히지 않고 이내 녹아버리는 눈발을 모으려고 양철통을 들고 이리저리 분주한 그가 포사이드임은 이런 자막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전에 안무가였던 한 예술가는 모든 역경에 맞서 다시 한번 문명의 과정에 의미 있게 기여하기 위해 어리석은 황야에서 수고합니다.”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세기의 발레리나 실비 기옘은 편한 트레이닝복에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올리브 나무로 올라가서 채취한 올리브즙을 마시며 메시지를 건넨다. “모든 공연장이 다시 개장할 때까지 마시고 싶어요. 최대한 빨리 가능하게 노력합시다. 건배!” 기옘의 발사진은 유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로 많은 관객은 기억한다.
인도의 전통무용 카탁을 현대무용으로 승화시킨 현대무용의 대표주자 아크람 칸은 주짓수를 배우면서 “무술은 우리에게 인내와 회복력을 가르쳐준다”고 전한다. 그리고 화산이 폭발하듯 열정적인 안무가 호페시 셱터는 강렬한 그의 안무와는 달리 요리하는 남자로 변신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알려주며 “때때로 춤을 추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글로벌 갈라 영상에 담았다.
세계 최고 극장이지만 지난 3월부터 록다운으로 무기력해진 모습은 위기를 맞이한 지구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전 세계의 예술가들은 자신이 걸어온 예술을 각자의 방식으로 놓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다. 아파트 좁은 베란다에서나마 운동화를 신고 탱고를 추는 무용수 커플의 슬기로운 춤생활처럼 모두에게 도전적이었던 한 해가 가고 있다.
김성한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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