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무더위에도 음식을 직접 픽업하는 까닭

내가 한 달에 최소 한두 번은 가는 집 근처에 국숫집이 있다. 전북 전주 국숫집의 서울 분점인데 8000원에 중면으로 만든 독특한 칼국수의 정석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칼국수가 눈에 삼삼해 찾아갔더니 문을 닫았다. 비슷한 케이스는 많다. 집 근처에서 20년을 넘게 버텨온 닭칼국숫집도, 학창 시절 추억을 소환해주던 즉석떡볶이 집도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2년차의 살풍경이다.

 

나도 변했다. 예전과 달리 배달음식을 아주 자주 먹는다. 코로나19 전에 나는 배달음식의 편리함을 경계했다. 편리함 대신 다른 맛의 요소가 빠졌을 것이라는 의심이 있었던 탓이다. 아내도 변했다. 아내는 일주일에 한두 번 나와 함께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구매했다. 하지만 이제 아내는 신선식품을 휴대폰으로 주문한다. 아주 급할 때만 시장을 다녀온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지 1년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집 식탁은 코로나19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다.

 

그래도 올해 초까지는 백신이 예전의 즐거움을 곧 찾아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백신의 방어막을 뚫어버리는 돌파감염도 문제지만 우리 일상의 활력을 주던 식당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행전안전부 인허가 데이터를 보면, 올해 7월까지 문을 닫은 일반 음식점만 3만1000개로 IMF 외환위기가 있던 1998년 폐업 규모(1만2500개)에 견줘 2배를 기록했다. 식당뿐 아니라 오프라인 식료품 매장도 직격탄이다. 재래시장이나 골목상권은 물론이고 대형마트조차도 고객이 줄어 지점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런 변동성은 누군가에게는 기회다. 일단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와 식품 관련 기업들이 약진 중이다. 팬데믹 이후 세계에서 가장 성장한 업종의 하나는 음식 배달업이다. 미국의 시장정보업체인 피치북(PitchBook)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이 새로운 시장에 140억달러(16조원)가 새롭게 투자되고 있다. 소비자의 80%는 이 새로운 소비 방식을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 이용하겠다고 답변했다. 식당이나 식료품점 그리고 시장 같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상점의 위기는 당분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 식탁을 쓸어버릴 듯한 쓰나미를 한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 뾰족수는 아직 없어 보인다. 외국에서는 식당이 20%가량의 수수료를 줘야 하는 배달앱을 쓰지 말고 스스로 음식점에 가서 주문한 음식을 직접 들고 오는 셀프 픽업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배달 음식의 이익을 플랫폼 업체가 아니라 식당에 주자는 거다. 식당에 대한 선결제 운동도 있다. 음식 리뷰에 영향을 받는 중소규모 식당에 가급적 선플을 남기자는 호소도 나온다.

 

식당과 시장은 근세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생명체다. 이곳은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이곳이 없어진다면 우리의 정체성도 흔들린다. 그래서 나도 이 무더위에도 배달앱을 쓰지 않고 직접 식당에 가서 음식 픽업을 하려고 애쓴다. 아름다운 생명체인 식당과 시장이 코로나19와 싸우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