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메밀 함량 33%’ 국수

초복을 앞둔 어느 날, 대학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메밀국수 육수를 내봤는데 맛이 있다며 괜찮으면 주말에 자기가 만든 메밀국수를 먹으러 오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남자가 나이 들면서 요리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친구가 그랬다. 삼겹살 같은 평범한 음식은 물론 훠궈 같은 특이한 요리를 준비해 친구들을 불렀다.

 

마침 주말이 초복이어서 시원한 메밀이 괜찮다 싶어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걱정이 됐다. 나는 메밀국수 메밀 함량에 민감한 편이다. 50~80%는 안 되겠지만 30% 정도의 메밀국수를 준비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한때 메밀국수 마니아였던 나는 여름철이면 30~100%까지 여러 가지 메밀 함량의 국수를 구비해놓고 골라 먹었다. 내 입맛에는 50~80% 정도가 좋았다. 구수함과 씹는 맛이 내 입맛에 가장 맞았다. 100%는 가성비와 찰기에서, 30%는 향이나 맛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렇다고 나를 위해 요리를 준비한다는 친구에게 30% 이상 메밀국수를 쓰라고 요구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일요일 오후 친구의 사무실에 가자마자 슬쩍 친구가 준비한 면을 보았다. 내가 잘 아는 국내 회사 제품이었다. 10년 전쯤에 내가 봤던 그 회사 메밀국수의 메밀 함량은 5%쯤이었다. 친구 눈치를 보며 국수 포장을 살펴보니 앞면에 메밀 함량 33%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세상이 참 좋아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일본산 말고는 50% 이상의 메밀 함유 국수는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국산 메밀가루를 사서 내가 직접 제면을 해서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1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이기는 하지만 국내산 메밀 100%인 국수를 구할 수 있다(500g 기준). ‘늦깎이 주말 요리사’ 친구처럼 동네 슈퍼에서도 30% 메밀국수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괴팍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취향이 있다는 건 한국 사회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확실하게 달라진 것 같다. ‘이제 이런 것까지 있구나’라는 감탄이 들 정도로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음식들이 등장하고 있다. 내가 최근 가장 놀란 것은 동네 슈퍼에서 발견한 냉동 비건 버거였다. 소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가진 대체육 햄버거는 외국에서는 주목받던 트렌드였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무덤덤했다.

 

소주와 막걸리도 그렇다. 대량생산을 위해 인공 감미료나 효소제를 첨가한 기존의 제품과 달리 곡물과 누룩으로만 만든 전통적인 술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값은 대량생산 제품보다는 꽤 비싸지만 전혀 다른 맛과 멋이 있어 마실 만하다. 라거 일색이던 맥주 시장도 에일이나 IPA 등 새로운 향취를 가진 수제 맥주가 등장한 지 꽤 오래다. “한국은 북한보다 맥주가 맛없다”는 자조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지난 초복, 친구가 말아준 메밀 함량 33% 국수는 맛있었다. 면도 육수도 별미였다. 아무리 어정쩡한 취향도 삶에 분명 활력이 된다. 그걸 인정해주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