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상추가 금추다

고깃집에 갔더니 상추 인심이 나빠졌다. 상자에 10만원이니 20만원이니 한단다. 예상했던 대로다. 양도 적게 주는데, 품질도 시들시들하다. 제대로 된 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주인이 풀죽은 목소리로 사과한다. 물난리든 폭염이든 잎채소들은 난리가 난다. 잎채소뿐이랴. 온갖 작물들이 애를 먹는다. 더울 땐 원래 웃자라는 잎채소들이 비싸진다. 작물이라는 게 너무 자라도 문제인 법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삭아삭하고 청신한 조직감을 잃어버리면 품질이 나빠진다.

 

서양음식점에서는 샐러드를 많이 파는데 값이 문제가 아니라 공급상들이 물건을 못 댄다. 폭우로 하우스가 다 쓰러지고, 밭이 초토화된 탓이다. 루콜라라는 놈이 있는데, 요즘 인기 있는 서양식당 채소다. 10여 년 전부터 널리 알려져 이제는 일반가정에서도 샐러드로 먹곤 한다. 루콜라도 종이 여럿인데, 쌉쌀한 맛이 강한 이른바 와일드 루콜라라는 건 ㎏당 10만원을 불렀다. 그나마도 물건이 없단다. 소 등심보다 비싼 값에도 살 도리가 없다. 그 루콜라를 키우는 농민을 안다. 그는 물에 젖어 썩어가는 채소들을 보며 가슴이 도려지는 것처럼 아팠다 했다. 몇 푼의 보상금을 받을지는 몰라도, 그의 마음과 재정을 위로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같은 자연재해라도 그나마 폭염이라면 과일들은 피해가 적거나 농익어서 맛이 좋아지곤 한다.

 

올해 같은 물난리는 정말 대책이 없다. 모든 작물이 크게 피해를 보고 주저앉았다. 며칠 전에 산, 한창 맛이 들 자두며 복숭아가 모양은 그럴듯한데 단맛이 잘 돌지 않는다. 사먹는 도시 소비자들이야 그런가 보다 하고, 올해는 덜 먹고 말지 하면 그만일지 몰라도 생산자들은 어쩌나 싶다. 한 상자 사들인 복숭아를 생식으로는 도무지 맛이 없어서 설탕 넣고 조렸다. 과일 당이나 설탕이나 본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으니 달게 먹으면 그만이겠지, 하고 위로했다. 차게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더니 맛있다. 손은 좀 가지만 그렇게라도 과일을 팔아주면 좋으리라.

 

포도농사 짓는 지인이 있어 전화를 돌려봤더니 올해는 기대하지 말란다. 해가 안 들어서 자신이 없다고 한다. 까맣고 단물 뚝뚝 듣는 캠벨 먹는 맛에 늦여름을 보내는 법인데 말이다. 머잖아 추석이 올 텐데, 지금 작물 자라는 사정을 보면 한바탕 난리가 나지 싶다. 사과와 배는 거의 추석을 보고 농사 짓는다. 선물용으로 제수용으로 거의 수요를 대기 때문이다. 물난리에 일조량 부족으로 과일이 안 익는데, 태풍이라도 오면 낙과가 우수수 생겨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판국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사정이 참 분하고 딱하다. 고깃집에 가서 상추며 깻잎 인심 사납다고 뭐라 할 일이 아니다. 또 시간이 흘러 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도시의 삶이겠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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