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오징어와 낙지

 

아마도 두족류나 연체동물, 해조류를 세밀하게 구분하는 건 한국이 으뜸인 듯하다. 그만큼 이 땅에서 분화된 산물이 다양하게 나온다는 뜻일 테고, 어떤 면에서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내던 인구 과밀 지역의 운명이었을 수도 있다. 유럽 같은 외국에서 낙지나 주꾸미, 문어를 구별하지 않는 걸 자주 봤다. 낙지나 주꾸미는 ‘작은 문어’라고 시중에서 부른다. 그러면 “문어의 새끼나 크기가 작은 문어는 뭐라고 부르냐”고 했더니 “그것도 작은 문어지”라고 대답하던 유럽 친구 요리사가 생각난다. 물론 김이나 미역, 다시마와 우뭇가사리류를 그냥 ‘해조’라고 부르는 게 유럽이기도 하다.

 

동해에 종종 간다. 산오징어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오뉴월에서 가을까지 크기를 가늠하고 입맛을 다신다. 이맘때가 오징어는 제일 커진다. 다른 개체도 대체로 그렇지만, 오징어는 좀 커야 맛이 좋다. 마른오징어도 크기가 있어야 감칠맛이 강해진다. 전에 울릉도에 갔더니, 시월에 다시 오라는 청을 들었다. 과장해서 거의 모든 울릉도 군민이 항구에 모이는 장관이 벌어진다고 했다. 큰 오징어를 잔뜩 잡은 배들이 가득 항구를 메우고, 급히 할복작업을 하느라 일꾼들이 바글바글 모인다는 얘기였다. 내장은 국 끓일 용도로 모으고, 말려서 돈이 되는 오징어가 지천이라 했다. 올 시월에 때를 놓치지 않고 그 섬에 가서 현장을 보고 싶다.

 

울릉도에 가지 않더라도 좋은 오징어를 먹을 수 있는 시절이다. 두툼하고 쭈글쭈글한 배오징어(배에서 말린 오징어)도 지금이 최고다. 시장이나 인터넷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동네 횟집에 가서 산오징어를 올해 가장 좋은 크기로 한 접시 시키면 어떨까 싶다. 오징어가 크면, 좀 다른 방식으로 회를 먹을 수 있다. 채 썰 듯 가늘게 썰지 않고, 너붓하게 포를 뜨듯 회를 떠서 내기도 한다. 같은 오징어라도 물리적인 모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속초나 주문진, 울진 같은 오징어로 유명한 동해안의 도시에 가시면 최상급의 오징어가 있겠다. 저도 좀 불러주시라.

 

오징어 얘기를 했지만, 낙지도 마침 지금이 절정이다. 이른바 대낙지가 쏟아지곤 한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낙지는 물론 크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며칠 전에 한 마리 삶았는데 냄비가 가득 찼다. 대낙지는 회로 먹기보다는 숙회나 탕, 찌개, 볶음에 좋다. 낙지는 열을 가하는 타이밍이 중요해서 많이 익히면 질겨진다. 특히 큰 놈이 그렇다. 하지만 물 좋은 녀석들은 딱 타이밍을 안 맞춰도 야들야들하다. 뻔한 소리지만, 시장에서 산낙지를 살 때는 힘이 좋아서 함지박에서 집어들 때 빨판에 동료 두엇쯤 들어올리는 놈을 골라야 한다. 낙지가 용을 쓰는 모습을 보면 기운 잃은 소에게 먹였다는 얘기, 산후통 앓는 산모에게 미역국으로 끓여 먹이면 탁효가 있었다는 말이 기억난다. 나라는 코로나19로 난리지만, 산물은 때를 잊지 않는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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