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서귀포 시장의 동태 할머니

제주 서귀포에 잠시 다녀왔다. 제주의 변화는 국토 중에서 아마도 가장 극적일 것이다. 고립, 격리 같은 낱말이 떠올랐던 세기를 지나 일종의 거대한 카오스 상태다. 십 몇 년 전만 해도 다수의 제주 사람들이 도시 이주를 고려했다고 한다. 감귤 값이 폭락하면서 희망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젠 도 전체의 땅값이 폭등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안 와도 경기는 여전히 좋다. 저비용항공사들을 포함해서 엄청난 비행편이 국내 여행객을 열심히 실어나르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공항이 포화상태여서 공항 건물에 브리지를 대기 힘들다는 뜻이다. 제주도 남쪽 서귀포를 들렀다.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시장으로 유명한 매일올레시장이 있다. 올레 걷기 운동의 영향으로 시장 이름까지 바꾼 곳이다. 활력이 넘친다. 시장 구경이 흥미롭다. 후지와라 신야는 1970년대 한국의 시장을 보고 “시장이 있으면 국가가 필요없다”고 했다. 그런 에너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곳은 제주의 시장 정도가 아닐까.

 

 

이 시장의 명물은 많지만 내 눈에는 이 시장 사람들, 넓게는 서귀포 사람들의 매무시를 꼽게 된다. 먼저 소개할 것은 시장 ‘원보마트’ 앞 세 분의 할머니다. 딱 일정한 거리로 세 분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처음 봐서는 무얼 파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종이로 잘 갈무리하고 포장한 ‘무엇’을 놓고 좌판을 벌여놓았다. 대단히 비싸고 귀한 물건처럼 보인다. 누군가 주문하면 그때서야 그 무엇이 드러난다. 바로 동태다. 과거 제주에는 동태가 귀했다고 한다. 동해에서 여기까지 오자면 돈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루는 것도 아주 조심스럽다. 동태포를 주문하자, 지느러미를 자르고 내장의 검은 막을 벗겨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섬세한 손길로 손질에 들어간다. 막칼로 대가리며 몸통을 서너 번 툭툭 잘라서 주는 게 고작인 ‘뭍’에 비하면 보물을 다루듯 한다. 경탄이 나온다. 그렇게 동태포를 떠서 팔고는 이내 다시 좌판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다음 손님을 기다린다. 지켜보는 동안 단 한 번도 소리내어 손님을 부르지 않았다. 하기야, 동네 손님들이 빤한데 불러 외친들 무슨 소용일까만.

 

다른 좌판에 내놓은 채소와 미역, 다시마도 어찌나 예쁘게 진열해 놓았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민속공예(?)를 보는 것 같다. 그 좌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장 손님이 미감의 충족을 받을 듯한. 마침 자리돔 철이라 손질해서 파는 할머니들이 많다. 역시 채반에 가지런히 놓은 모양이 예술 수준이다. 건어물 가게 앞 말린 참돔은 또 얼마나 참하고 예쁘던지. 내장을 발라내고 하나하나 이쑤시개를 꽂아 내장 안이 잘 마르도록 해서 진열해놓았다. 시장 구경을 하다가 배가 고파 한 식당에 들어갔다. 두 할머니가 낮에만 장사하는 금복식당이라는 비빔밥집이다. 단돈 3000원. 입에 착착 붙는 비빔밥을 그득하게 먹었다.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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