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음식과 노동

음식 관련 책의 출간이 아주 많아졌다. 관련 책만 내는 전문 출판사가 있을 정도다. 새로운 개념의 판매술과 별난 디스플레이로 유명한 일본의 한 서점에는 제일 좋은 자리에 음식 책을 배치한다. 음식 책도 카테고리가 세분되고 있다. 주로 조리법을 담은 책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인문과 사회과학으로 음식을 다룬 책의 비중이 커졌다. 역사에서도 음식사, 음식사회사와 문화사 책도 많다. 음식을 통해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련 학과에서 이 분야의 전공자가 거의 없었다. 최근에 몇몇 박사급들이 배출되고, 외국 유학 가서 전공하는 이가 생겨날 만큼 음식은 이제 전방위적으로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먹는 일은 즐겁지만, 그 이면의 불편한 진상(眞相)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를테면, 도축장을 취재하거나 에너지 과소비 산업인 축산업과 우리가 늘 불안해하는 GMO 산업의 진실 같은 것 말이다. 이제 그런 책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개는 번역서다. 그동안은 출판시장이 어마어마한 영어권의 일이었다. 가까운 일본도 “이게 책으로 나와서 팔릴까” 싶은 책도 내는 나라다. 몇 년 전인가, <이베리코를 사러>라는 일본 책을 본 적이 있다. 이베리코 돼지는 정말 도토리만 먹여 키우는지 궁금해서 스페인 현지를 들락날락한 ‘오타쿠’ 필자의 작품이다. 한국에선 소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런 집요한 음식 책은 언감생심이었다. 이제는 시장이 달라지는 것 같다. 치킨 시장만을 깊게 판 책이 국내 저자에 의해 출간되어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축산업의 바탕을 떠받치는 노동 체험을 기록한 역작도 나왔다.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책이다.

 

처음 장부터 충격으로 시작한다. 산란계들-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달걀의 생산자들-을 돌보는(?) 농장에 취직한 필자의 묘사는 상상을 넘어선다. 케이지에 갇힌 닭들은 심하게 말하면 도화지만 한 크기에 네 마리가 ‘때려넣어진’ 상태다. 너무 좁아서 닭이 닭을 깔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일년에 300개씩 알을 낳느라 닭의 뼈가 너무도 약해서 닭 날개를 잡아들기만 해도 뼈가 부러진다. 악취와 닭의 비명으로 가득 찬 현장음이 활자의 갈피로 생생하게 들려온다. 닭에 생기는 이, 그것을 죽이려는 살충제 살포 같은 최근의 이슈들도 이 책에서는 생생한 현장으로 묘사된다. 결국 그는 2주 만에 농장을 탈출한다. 그의 표현을 요약하면 ‘미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동물복지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하다는 또렷한 증거다. ‘식품=가격’의 프레임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다시금 상기시킨다. 모름지기 지금 우리 식품과 요식 산업의 저변은 저런 설명하기 불편한 세상을 ‘깔고 앉아’서 유지되는 듯하다. 너무 힘들고 고단한 이런 노동을 한국인이 환영할 리 만무하다. 그러니 외국 노동력에 기댄다. 양계장은 물론이고 축산, 어업, 농업 전반의 일이다. 한국인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돼지 분뇨를 치우다가 질식사한 것도 결국 외국인 노동자였다. 먹거리의 비명이다.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침묵하는 아우성이다. 이제 우리가 먹는 일을 다시 들여다볼 시기다. 이미 늦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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