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사진과 독심술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에 담기는 순간도 인화된 결과물도 모두 거북하다. 단체 사진은 질색이다. 마지못해 찍힌 사진 속의 나는 대부분 못나게 웃고 있다. 양손의 V자는 어색함을 잘라내고 싶은 가위 같다. 제대로 설치된 조명 아래에서 촬영된 증명사진은 내가 포토제닉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믿었다. 믿음 덕에 실물의 미학적 평가는 유보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사진빨을 핑계로 사진을 기피했지만 사실은 보이고 싶은 나와 보이는 나의 괴리가 사진을 멀리하는 심리의 뿌리다.

유명인의 초상 사진에는 단 하나의 표정이 있다. 그들이 보이고 싶은 얼굴이다. 불멸의 의지를 표현하는 근엄한 초상이다. 오랜 시간 부동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초상화를 남기고자 했던 귀족들의 한결같은 표정이 유전돼 있다. 주목받으며 살아온 존재감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욕망의 매너리즘이다.

초상 사진으로 각광을 받던 필립 할스만은 유명인일수록 카메라 앞에서 굳어지는 것이 불만이었다. 특히 정치인, 예술가 등 유명인은 하나의 마스크를 돌려쓰는 양 엄숙했다. 눈물 흘리는 아인슈타인을 포착하는 행운은 자주 오지 않았다. 필립 할스만은 자신의 인장이라 할 만큼 유명한 사진 미학 ‘점프학(Jumpology)’을 창안했다. 촬영 대상 인물들에게 공중으로 뛰어오르라 요구한 뒤 공중 부양 상태에서 인물이 노출하는 무방비한 표정을 담는 촬영술이다. 유명인의 지엄한 가면을 벗겨 솔직한 내면을 잡아내기 위해 고안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배우 출신으로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왼쪽 사진)다. 왕가의 위엄과 기품을 연출해야 했기에 억제된 명랑한 성정은 할스만의 카메라 앞에서 잠시나마 개방되었다. 사진 속 그레이스 켈리는 유쾌한 소녀로 돌아가 있다. 또 한 사람은 부통령 시절의 리처드 닉슨(오른쪽)이다. 동심을 찾은 그레이스 켈리와 달리 입술이 살짝 올라간 어색한 표정이다. 무엇인가 감추고 있는 음울한 인물로 보인다. 워터게이트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닉슨이어서 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으나 켈리와 크게 대비된다. 할스만의 촬영은 일종의 독심술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필립 할스만의 사진전 ‘점핑 어게인’이 전시 중이다. 2013년 처음 전시돼 호평을 받은 바 있는 할스만 사진전의 기획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다. 점프 촬영술로 국내 유명인 사진을 찍어 친근하게 연결했고, 점프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도 홍보에 이용했다. 이 사진전은 김씨가 뿌듯해할 만큼 성공적이어서 앙코르 전시를 고려한다고 했었다. ‘점핑 어게인’은 어쩐 일인지 다른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건희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경영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고 한다. 문화사업가 김건희씨는 ‘일류가 아니면 사람을 속이는 것’이어서 일류를 선별해낸다. 일류가 창조하는 문화를 통한다면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고가 아니면 기만하는 것이라는 윤리관도 아리송하나 최고의 예술가를 소개하겠다는 전시기획자로서의 다짐이라 이해한다. 그러나 사람이 단박에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신묘한 힘을 기대하는 주문이라면 모를까 조악한 자기계발서에서도 주저할 만한 께름칙한 신념이다. 김건희씨에 대한 세간의 소문과 연결돼 수상하게 읽힌다. 점프한다고 중력을 거스를 수 없듯이 사람도, 정치도 짧은 시간 안에 변화될 수 없다.

김건희씨의 점핑 사진을 상상해본다.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해맑은 표정일지, 불편한 닉슨의 얼굴일지 궁금하다.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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