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소주잔 부르는 과메기

과메기라는 지역 음식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전국적인 인기를 끌 줄 몰랐다. 홈쇼핑에도 등장한다. 웬만한 술집에서 겨울 안주로 나오기도 한다. 과메기의 주산지는 포항 구룡포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이들도 으레 찬바람이 불면 과메기를 한 점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현지에서는 파시(波市)도 열린다. 파시란 특정 어획물이 대량으로 나올 때 열리는 현장 시장을 말한다. 조기나 고등어 파시란 말은 들어봤어도 과메기 파시라니.

이 음식은 만드는 것부터 입맛을 돋운다. “얼었다 녹았다 반복”한다고 말한다. 바다 덕장에 걸어 놓은 생선이 제 온도에 따라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어가며 수분이 줄어드니, 그 건조 방법에서부터 먹고 싶은 욕망을 불러오는 것이다. 강원 인제 용대리 덕장에서 명태가 마르듯이, 과메기는 이제 겨울 건조식품의 한 전형이 되었다.

과메기의 인기가 수직상승한 것은 역시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그 전에는 지역의 출향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도시의 일부 가게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나는 이십여년 전에 처음 서울에서 시식했는데, 비린 듯 고소한 맛이 소주잔을 불렀다. 이 음식이 어느 누구의 창안이 아니라 자연스레 생겨난 명물이라는 것도 장점의 하나다. 특히 먹는 방법이 이채롭다. 고소한 겨울 배추와 쪽파에 마늘 저민 것, 초고추장과 함께 미역에 싸먹는 것이다.


매운 양념은 과메기 특유의 비릿비릿한 향을 잡아주고 미역의 상쾌한 질감이 입을 개운하게 만든다. 아주 작정을 하고 만든 것처럼 궁합이 좋다. 미역은 동해 남부가 원래 주산지이고, 과메기처럼 겨울에 흔해서 자연스레 생겨난 곁들임이었을 것이다. 과메기에는 몇 가지 배경 이야기도 있다. 왜적이 고기를 뺏어가는 걸 막기 위해 초가지붕에 던져둔 생선을 나중에 꺼내보니 맞춤하게 ‘얼말려’(얼면서 말라) 있더라거나 과거 보러 가는 선비가 꿰어둔 생선이 돌아와보니 과메기가 돼 있었다는 말도 있다.

본디 아궁이를 때는 부엌 살창에 걸어서 연기 쐬어가며 말리던 지역 풍습이 현재의 과메기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런 풍부한 말씀과 함께 맛있게 만든 과메기 쌈을 입에 미어터지게 넣으면, 이런 행복이 어디 있나 싶다. 기왕이면 포항이나 구룡포 현지에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해안가에서 과메기 건조 장면을 보는 것도 재미다. 이 지역은 알려진 대로 겨울이 청명하고 낮에는 제법 따뜻한 바람이 불 때도 있다.

요새는 과메기 원조라는 청어로 만든 것도 꽤 많다. 한동안 청어가 안 잡혀 꽁치로 대체한 것이 현재의 과메기 역사다. 과메기 제조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내장도 빼지 않고 통째로 말린 것과 내장 제거는 물론 배를 갈라 빨리 말린 것이 있다. 내장까지 든 놈을 구수한 발효 냄새 맡아가며 배를 째고 손질하는 재미도 있다. 중독적인 맛이 있는 과메기를 먹으러 다시 구룡포에 가고 싶은 겨울날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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