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속풀이 해장 파스타

한국에 언제 파스타가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조선말과 대한제국 시기 열강의 공사들이 궁에 들어오고, 그들을 접대하느라 파스타가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서양 음식물을 수입한 해관(세관) 자료가 있다. 와인과 샴페인, 과자류와 국수의 수입이 있었다. 서양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근대식 호텔이 서울에 세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에서 구할 수 없는 물자는 주로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수입했다. 파스타는 서양인에게 중요한 음식이었다.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요리도 간편했다. 당시 어떤 조리법을 썼을지 궁금하다. 100년 넘게 흐른 지금, ‘모든 재료’가 파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 된장이나 간장 파스타가 있었을까. 아마도, 서양인에게 대접하는 음식이니 서양 재료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것이다. 토마토소스와 고기볶음, 치즈 같은 것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지금은 우리 식재료와 파스타의 융합이 흔하다. 묵은지 파스타도 있다. 곱창을 볶아 올리기도 하고, 국물 넉넉한 떡볶이 스파게티도 팔린다. 서양재료여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파스타집이 ‘이태리면집’이니 ‘이태리백반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은, 이런 인식의 반영이다. 외래 것을 우리 문화에 동화시켜 독자적으로 즐기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때 시중의 말로 유명했던 “남이사!(남이 뭘 하건 말건!)”다.

 

파스타는 우리 음식문화에 생각보다 더 깊게 들어와 있다. 굳이 그걸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전제하는 것조차 혼란스러울 정도다. 파스타집에 가면, 국수를 먹듯 후룩 후룩 하는 ‘흡입 소음’이 자연스럽다. 이탈리아에선 없는 소리다. 여기는 한국이니까, 뭐 이런 거다. 이 소음을 일본에서는 ‘누하라’라고 해서 약간의 공론이 있다. 누들 + 허래스먼트, 즉 스파게티 먹는 소리가 남에게 괴롭힘을 준다는 뜻이다. 원래 일본 국수는 소리 내서 먹는 것이 결례가 아닌데, 파스타를 먹을 때 소리를 내는 건 교양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나온 논의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거 없다.

 

학교 급식에 파스타가 나온 지 오래다. 아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더러는 밥에 딸려나오는 반찬처럼 제공된다. 무엇이든 밥반찬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일본인이 원조다. 포크커틀릿도, 햄버그스테이크도 쌀밥의 반찬으로 팔린다. 다만 “빵으로 할까요, 밥으로 할까요”는 남아 있다. 서양식인 빵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요리의 뿌리는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단체급식이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의 급식에도 파스타가 등장한다. 가장 흔한 건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다. 마카로니 샐러드라고도 한다. 왕년에 이른바 ‘한정식’에도 나왔던 음식이다. 파스타는 밥까지 만나서 완벽하게 동양화 내지는 한국화되었다. 남은 소스에 밥을 볶아주면 좋겠다. 김가루도 넣고, 김치 다진 것도 섞어서 말이다. 한 문화는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가면서 변형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직장인들에게 동네 파스타집의 인기 메뉴를 알려드린다. 얼큰한 속풀이 해장 파스타다. 부장님도, 이사님도 젊은 직원들 따라가서 입에 안 맞는 크림파스타 안 드셔도 된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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