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아동학대 소재 드라마의 새 경향

아이들의 천진한 목소리가 초등학교를 가득 채운다. 가을 체육대회가 한창인 운동장에서 한 남자아이가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런데 릴레이 경주를 마친 남자아이 앞에 이상한 환각이 나타난다. 어린 여자아이가 고무줄놀이를 하며 웃고 있는 모습이다. 어딘지 불안해 보이던 남자아이가 건물 계단 위로 올라간다. 제일 높은 계단에 서 있던 아이는 갑자기 아래로 몸을 던진다. 

 

올해 드라마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막을 연 MBC 미스터리 스릴러 <붉은 달 푸른 해>는 아이들의 숨겨진 상처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아동상담사인 주인공 차우경(김선아)은 계단 아래로 투신한 10살 남자아이 한시완(김강훈)을 상담하게 된다. 시완의 이상행동은 여동생을 교통사고로 잃은 이후부터 생긴 증세였다. 하지만 시완은 상담 사실이 밖으로 퍼져나갈 것을 우려한 부모의 반대로 곧 상담을 중단한다.

 

MBC <붉은 달 푸른 해>의 한 장면.

 

상담이 계속 필요하다는 우경에게 “내 자식은 내가 더 잘 알아요”라고 응수한 시완 어머니의 말은 현실에서 수많은 부모가 되뇌는 말이다. 부모들은 정말 아이들에 대해 잘 알고, 보호하고 있을까? 드라마는 이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질문은 곧바로 이어진 사건에서 한 단계 더 나간다. 상담센터로 향하던 차 안에서 시완 어머니의 상담 중단 통보 전화를 받은 우경은 근심에 휩싸인 채 집으로 차를 돌린다. 바로 그때 누군가 우경의 차로 뛰어든다. 시완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충격과 죄책감에 빠진 우경은 자동차 전용도로라서 운전자 과실을 묻기 어렵다는 변호사의 말에도 아이의 가족을 수소문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절망한 우경이 묻는다. “길바닥에서 어린애가 죽었어. 근데 그 앨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부모조차도. 어떻게 아이가 무연고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시완의 사연이 부모의 방임을 지적했다면, 도로에서 사망한 아이의 이야기가 겨냥하는 질문은 우리 사회의 방임 문제로 확대된다. 우경의 의문에 “아이들이라고 모두 보호자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라고 답하는 경찰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부모라고 해서 다 보호자인 것은 아니다. 첫 회에서 등장한 김한솔 어린이 학대 치사 사건처럼 아동학대 가해자의 절대다수가 부모다. 그렇다면 그런 부모 아래 방치된 아이들, 그리고 그런 부모조차 없는 아이들은 누가 보호할 것인가.

 

이는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최근 드라마들의 공통된 질문이다. 이전까지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가시적 폭력 위주의 아동학대 문제를 그렸다면, 같은 주제를 다루는 요즘의 드라마들은 더 폭넓은 사회적 방임의 문제를 제기한다. <붉은 달 푸른 해> 이전에 올해 초 방영된 tvN <마더>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 혜나(허율)는 가난한 싱글맘과 그의 난폭한 동거인 아래서 학대당한다. 아이를 눈여겨본 교사들이 수차례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학대는 점점 심해진다.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 수진(이보영)이 혜나를 데려가 보호자를 자처한다. 부모가 버리고 사회가 방임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지난 9월 방영된 KBS 미스터리 호러 <오늘의 탐정>은 첫 번째 사건으로 어린이집 교사에 의한 아동 납치 사건을 다뤘다. 드라마는 이 범죄를 개인적 문제로 몰아가기보다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함께 환기한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어린이집 학대 사건의 근본적 문제가 거기에 있다.

 

드라마 속 모든 범죄의 배후에 있는 생령 선우혜(이지아)의 사연 또한 같은 맥락 안에 위치한다. 어린 우혜는 신변을 비관해 가족 동반 자살을 시도한 아빠의 손에서 홀로 살아남는다. 어린 자녀들과의 동반 자살은 정확히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이다. 이는 아동을 향한 가장 극단적인 폭력 행위일 뿐이다. 더구나 우혜는 가족들 시체 옆에서 수일간이나 방치된 채로 있었다. <오늘의 탐정>은 그렇게 부모와 사회가 유기하고 방임한 아이가 원귀로 돌아와 세상을 상대로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최근 아동학대 소재 드라마의 새로운 경향은 아동 문제 인식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최근 3년간의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제일 두드러진 변화는 아동학대를 가족 간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의 증가다. 신체학대를 넘어 정서학대와 방임 등도 문제로 인식하는 등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의 범위가 확대됐다는 것이었다.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늘고 피해 아동의 심리치료도 늘어났다.

 

물론 뒤집어보면 아동학대 범죄가 그만큼 증가하고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 상황에서 아동학대를 사회문제로 가시화하고 문제의식을 확대하는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최근작인 <붉은 달 푸른 해>처럼 기존의 아동학대 소재 드라마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은 아동 우울증, 아동 자해 등의 문제까지 다루는 작품이 등장한 것은 더 주목할 만하다. <마더>와 함께 2018년 드라마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