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슈라 위즈겐, 엘리펀트, 2022, 1시간 ⓒBouchra Ouizguen, 사진촬영: Beniamin Boar
머리에 무거운 터번을 쓴 이들이 무대의 바닥을 닦고, 향을 흔들었다. 양탄자를 바닥에 펼치자, 무대는 마치 모로코의 가정집, 마을 어귀 같은 삶의 공간이 되어,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반복해온 덕분에 능숙해진 퍼포머들의 소리와 움직임을 담는다. ‘엘리펀트’는 모로코 출신 안무가 보슈라 위즈겐이 긴 시간 협업해 온 모로코의 여성 퍼포머들과 함께 작업한 콘서트이자 퍼포먼스다.
그들은 홀로, 둘이, 셋이, 넷이 노래하고 춤춘다. 어떤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기보다,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장면의 파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 안에서 관객을 붙잡는 것은 퍼포머의 목소리와 움직임이다. 각자의 소리와 움직임은, 별다른 장치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힘있게 마음에 닿는다. 그것은 연희자의 연륜으로부터 비롯되는 힘일까. 모로코 전통 연희의 ‘명인’들이 쏟아내는 에너지가 무대와 객석을 충분히 덮는다.
모로코 지방에서 구전으로 전수되어온 형식을 바탕으로 목소리와 타악기가 만드는 화음은 충분히 아름답고, 아스라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오래전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었을 것이, 오늘의 사람에게는 유물이 되어 예술의 이름으로 지금 여기 소환될 때 느껴지는 부딪힘 같은 것도 동반한다.
평범한 영웅들의 일상적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작품은, 모로코 문화예술의 전통적 요소들을 엮어, 화합하고 격려하고 재회하면서 사회적 유대 관계를 쌓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존중을 전한다. 여기에는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전통과 ‘지금의 것이 아닌’ 전통을 일상 안에 깊이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애정이 있다. 동시대를 사는 창작자들에게 ‘전통’은 언제라도 자유롭게 찾아 들어가 살펴볼 수 있는 영원한 학교이지만, 많은 것들이 그랬듯이 잠시 눈을 떼면 생각보다 쉽게 사라질 수 있는, 흔들리는 세계이기도 하다. 거대하지만 멸종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코끼리처럼, 사라지려는 것들의 아름다움이 거대한 명인의 몸을 타고 흘러나온다.
<김지연 전시기획자·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