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희 작가가 운전을 하고 가던 길에서 처음 만난 고라니에 대한 기억을 나누어주었다. 도로를 가로지르던 중 잠시 멈춰 선 작은 생명은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눈길로 작가를 바라보았다. 이내 다시 달려가기 시작한 생명 뒤를 어떤 동물이 빠르게 추격했다. 이 생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작가는 곧 자료들을 통해 고라니라는 것을 알았다. 고라니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후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한 문선희는 상처 입은 고라니들을 돌보고,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참여했다. 위축되어 있는 다친 고라니가 보호소에 머무는 동안, 작가는 그들의 초상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지난 10년간 만난 고라니들의 초상사진을 최근 발표했는데, 마치 고라니들의 졸업앨범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카메라를 들고 선 작가와 스스럼없이 눈을 마주칠 수 있기까지는 긴 교감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마리 한 마리에 대한 기억이 작가에게 남아 있다.
고라니에 대해서는 ‘유해 야생동물’과 ‘멸종위기종’이라는 모순된 규정이 존재한다. 고라니가 토착종으로 서식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두 지역뿐인데, 90% 넘는 개체가 한반도에 살고 있다. 약 70만마리에 달한다. 신생대 마이오세에 처음 등장한 고라니는 빙하기에 멸종한 동물들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는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어 보호종으로 여겨지지만, 한반도에서는 한 마리당 약 3만원의 포상금이 주어지는 유해종이다. 연간 약 10만 개체의 고라니가 포획으로 사라진다. 로드킬도 흔하다.
인간의 삶이 가장 중요한 사회에서 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고라니의 멸종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걸까. 고라니의 반듯한 눈망울에 눈을 맞추기가 불편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