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이상한 메타버스

권두영, 이상한 메타버스, 2022, ⓒ권두영



2016년, 인공지능에게 시인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교재 삼아 그의 문체를 학습시키고, 재개발이 아니라 도시재생이 결정된 익선동에 대한 시를 쓰게 했던 작가 권두영이 이번에는 이상의 문체로 메타버스를 탐색했다. 인공지능은 이제 물리적 공간의 건물, 골목길이 아니라 디지털 세계 안에 구축된 메타버스 속 공간을 거닌다.

2021년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와 카카오브레인이 공동 개발해 탄생한 인공지능 시인 시아는 인터넷 백과사전과 뉴스로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근현대 시 1만2000여편을 학습하며 시작법을 배운 뒤 올여름 개인 시집도 발표했다지만, 권두영이 함께하는 인공지능은 오로지 ‘이상’의 문체만을 학습한다. 100년 전 사람들에게 낯설 뿐 아니라 불편하기까지 한 시를 선보였던 시인의 기술(이라고 쓰고 정신이라고 받아들이련다)을 이어받은 인공지능은(그는 아직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다), 메타버스 ‘스페이셜’에 열려 있는 100여개의 가상공간을 여행하며, 그곳에서 수집한 정보들을 토대로 100편의 시를 썼다. 그는 ‘이상’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가 긴 시간 갈고닦아 온 언어체계를 무시할 뿐 아니라 와해시키는 문체를 구사하며 메타버스를 탐색했다.

나를 대신해 메타버스를 누빌 아바타를 커스터마이징 한 후, 권두영이 ‘스페이셜’에 열어놓은 ‘이상한 메타버스’에 접속했다.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닮은 그래픽 공간이 펼쳐지고, 책에서 빠져나온 듯한 단어의 파편들이 공중을 부유한다. 공간을 움직이다 만나는 큐알코드를 클릭하면 인공지능의 시가 나타난다. 컴퓨터 음성이 이상의 자동기술법을 학습한 인공지능의 시를 낭송한다. 띄어쓰기 없는 시를 호흡 없이 낭송하는 컴퓨터의 음성이 차갑다.

<김지연 전시기획자·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연재 | 김지연의 미술 소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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