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도 바람도 좋았던 지난 토요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다. 행진 대열에는 어떤 이념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를 고민하며 모였다.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공유하는 발언을 듣다 보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현재 지구가 보내는 기후위기에 대한 신호는 심상치 않다. 이 선명한 신호를 외면하면서도 인간이 지구 위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많은 예술가는 기후위기 문제를 고민하며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2020년 여름부터 강원도 화천의 문화공간 예술텃밭에서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레지던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문화예술계의 예술가, 기획자, 기록자들이 함께 기후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각자의 주제를 탐구하면서 작업을 발전시켰다.
참여 작가 김보람은 나무에 주목했다. 작가가 리서치한 자료에 따르면 2040년 한 해 폭염 일수는 지금보다 29%가량 늘어난 64~69일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무들은 앞으로 1년에 6.4㎞씩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나무를 매년 옮겨심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외국의 몇몇 기관들은 숲을 이동하기 위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작가는 보드게임으로 이 임무를 수행해보기로 했다. ‘움직이는 숲’이라 명명한 이 게임은 원시림의 마흔아홉 그루 가운데 서른 그루를 죽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잘 옮기면 승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인, 연구가, 운동가, 기업인의 역할을 부여받은 플레이어들이 역할에 맞는 목표를 성취하면서 나무를 옮긴다. 게임은 개인의 승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들이 모두 합심해서 나무를 옮길 때 비로소 숲은 안전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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