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여름비

뙤약볕을 식히는 여름비는 황홀하다. 굵은 빗줄기가 순식간에 대지를 적시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듣는 것만으로도 속 시원한 소나기 같은 노래가 있을까?

 

미국 록그룹 C.C.R이 부른 ‘이런 비를 본 적 있나요’(Have you ever seen the rain)가 그런 노래다. 폭풍 전의 고요가 끝나면 곧 비가 내릴 거라는 노랫말처럼 격정적인 리듬과 멜로디로 휘몰아친다. 그들이 발표했던 또 다른 노래 ‘누가 이 비를 멈추랴’(Who’ll Stop the Rain)도 함께 떠오른다. 비로 상징되는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노래다.

 

1990년대 후반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쳐진 밴드의 내한 공연 때 ‘슈지 큐’를 들으면서 신나게 몸을 흔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원년 멤버들은 아니었지만, 청바지 입은 초로의 로커들이 사랑스러웠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제곡인 ‘빗방울은 내 머리 위에’(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도 이 여름에 어울린다. 폴 뉴먼 주연의 영화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고, BJ 토머스가 불러서 크게 히트했다.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진 캘 리가 부른 ‘싱인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도 매력적인 노래다. 듣다 보면 금세라도 비가 그친 뒤 무지개가 떠오를 것 같다.

 

내리는 비를 보면서 사랑을 얘기하기엔 너무도 더운 날씨지만 호세 펠리시아노의 ‘레인’은 아무리 들어도 싫증 나지 않는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세계적인 라틴팝 가수인 그는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기타 연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멋진 기타 리프와 어우러진 감미로운 그의 목소리가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는 여름밤을 상상하기엔 제격이다.

 

시원한 여름비가 이 무더위와 바이러스를 말끔하게 씻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도 곧 가을이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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