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여적]브레이브걸스 역주행

역주행으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브레이브걸스.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 제공

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은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812년 출간한 시집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가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스타로 떠오르자 친구에게 전한 말이라고 한다. 바이런의 명언을 실감하게 하는 일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4년 전 발표한 노래 ‘롤린’이 느닷없이 역주행해 음악방송과 음원차트 1위를 휩쓸면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4인조 걸그룹 브레이브걸스 얘기다. 그들의 영상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할 정도로 요즘 인기가 뜨겁다.

 

2016년부터 활동했지만 5년째 인지도 낮은 무명으로 살았다. 서럽고 힘겨웠다. 30세 멤버 유정은 취업준비를 하려고 한국사를 공부했고, 28세 유나는 석 달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해체와 포기가 어른거리던 그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달 24일 유튜버 ‘비디터’가 브레이브걸스의 군부대 공연 장면과 재미있는 댓글을 편집한 3분19초짜리 영상을 올렸는데 이게 ‘폭발’했다. 1주일 만에 조회 수 600만회를 넘겼고 지금은 1400만회에 육박한다.

 

무명 시절 브레이브걸스는 60여차례 군부대 공연에 나섰다. “무대가 간절했다. 불러주시니 감사한 마음으로 갔다”고 했다. 배로 왕복 12시간 걸리는 백령도도 가고, 땅끝마을도 갔다. 열심히 찾아와 공연하는 브레이브걸스에게 군인들은 의리로 답했다. 제대하면서 후임들에게 브레이브걸스에 대한 팬심을 ‘인수인계’했다고 한다. “18군번인데 16군번한테 인수받았고, 전역 때 20군번에게 인계해줌”이라는 댓글이 웃음을 줬다. 군인 팬들의 전폭적인 성원이 있었기에 유튜브 알고리즘을 뛰어넘는 인기몰이가 가능했다.

 

비단 그 덕분만은 아니다. 브레이브걸스가 주목받는 것은 단순한 복고 바람도 아니다. 빛나지 않는 일이라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덕분이다. 팬들은 브레이브걸스의 청량한 노래와 가오리춤에만 열광하지 않는다. 인생역전의 아이콘을 넘어서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버텨줘서 참 고맙다” “꼭 성공하라”는 응원을 열렬히 보내면서.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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