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오감의 건축

아돌프 로스, 뮐러 주택의 거실. 인간이 공간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안락함과 풍족함이 그가 추구한 건축의 목표였다. 출처: creative commons

건축에서 장식은 범죄행위와도 같다. 고전주의를 지나 20세기 새로운 모더니즘이 태동하기 시작한 격동의 시대,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장식과 범죄>라는 책을 통해 기존 건축과 디자인 세계에 선전포고를 한다.

 

로스에게 장식은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된 치장으로 건물을 풍성히 꾸미는 것이었다. 통일된 양식은 그 자체로서 완결을 의미했다. 당시 주목을 받는 건축들은 조명기구, 책상 다리, 벽지, 문고리, 창문틀 등 집 안 곳곳이 모두 하나의 양식으로 채워진 것들이었다. 점점 양식은 번식한다. 그리고 장식의 농도와 통일성 속에서 사람들은 과시감과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에게 이러한 편집적인 장식은, 말하자면 문신으로 피부의 표면을 모두 덮으려는 욕망과도 흡사해서 병적인 것이었다. 당시 세기말의 장식에 대한 집착은 일견 문화적인 취향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근저에 있는 것은 원시적인 욕망에 불과하다고 로스는 역설한다.

 

양식의 공간은 타자를 의식하며 거주자를 구속한다. 생활 속 필요한 요소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 양식에 맞지 않는 것은 거부되며 공간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장식 자체가 되는 것이다. 로스의 비판이 궁극적으로 향한 것은 사용자 중심의 생활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1930년 완성된 뮐러 주택은 이러한 생각이 잘 드러난 그의 대표작이다. 독특하게 그는 평면도, 입면도를 통해 설계하지 않고 내부 방들의 구성으로부터 전체를 완성했다. 결과로는 다양한 높이와 크기의 방들이 층으로 나뉘지 않고 흐르듯 엮이며 홀과 테라스로 확장된다. 이러한 공간 구성의 입체성이 장식을 대체할 새로운 시대의 건축이라 보았다. 이에 더하여 그는 장식 대신 다양한 재질을 통한 촉감을 건축에 도입해 깊이와 풍성함을 연출한다. 뮐러 주택은 방마다 기능에 적합한 촉감을 지니고 있다. 식당에는 차분하고도 묵직한 마호가니의 질감에 의해 정숙한 공기가 흐르고 거실의 대리석과 카펫은 묘한 어울림을 만든다. 인간이 만든 장식과 달리 오랜 시간이 축적된 대리석의 질감은 인간의 의식을 깊숙이 자극한다. 한편 부엌은 청결한 백색과 따뜻한 노란색 페인트로 처리해 가사 업무에 필요한 밝음을 제공하면서 때가 타면 다시 덧칠해 청결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를 통해 건축은 표피의 장식에서 오감과 호응하는 경험의 건축으로 나아간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