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옥수수, 감사하며 먹기

어려서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허기를 자극하는 내용이 꽤 많았다. 국어시간에 할머니댁을 방문하는 손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구마를 쪄서 먹는 대목에서 옆구리가 아플 만큼 배가 고팠다. 노래는 안 그런가. 하모니카 옥수수 말이다. 더러 강원도쪽 친구들이 감자랑 옥수수 말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데, 이해는 되더라도 에이, 얼마나 맛있는데하고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탤런트 최진실씨가 궁핍의 시절에 먹었던 칼국수와 수제비는 커서 절대 안 먹었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 누가 해주면 맛있게 먹을 텐데라고 한다. 옥수수도 그렇다. ‘당원이라 부르는 사카린을 넣고 삶거나, 그렇게 삶은 걸로 범벅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슬쩍 삶은 걸 연탄 부뚜막에 올려놓고 구우면 얼마나 맛있었는가. 시중에 옥수수가 나온다. 지역 차이, 품종 차이, 파종 시기에 따라 출시가 달라지는데 요즘 나오는 것부터 알을 보니 실하고 맛있다.

 

여름이 무르익는 8월에는 더 달고 알찬 옥수수가 나올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옥수수가 많이 싸다. 망이나 자루에 10개나 20, 더러 시장에서 도매로 팔리는 것들은 50개 또는 100개가 들어 있는데 값을 적기가 민망하다. 특히 올해처럼 일조량이 많은 해는 더 잘되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신문들이 농사가 잘되면 들에서 밀짚모자 씌운 농부 사진을 찍어서 1면에 올리곤 했다. 그것도 이제는 민망한 걸 알아서 정신 똑바로 든 신문사에서는 풍작이 가져다주는 고통의 아이러니를 기사로 다룬다.

 

농사가 잘되면 농민이 더 고민하는 나라는 세계에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남이야 뭐라 하든 보조금을 슬쩍슬쩍 안기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농촌이 무너지지 않게 정책을 세우니까. 우리 정부는 고작 한다는 게 항의하는 농민에게 물대포질을 하고, 사과 한마디 없다.

 

우리는 거의 매년 옥수수가 풍작인데도 가공품은 죄다 수입 원료를 쓴다. 옥수수가 시중에 많이 풀리는 이유를 들어보면 가슴이 쓰리다. 첫째, 촌에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있어야 소비를 하지. 둘째로는 노인이 농민의 다수를 차지하니 시비 많이 해야 하고 보살핌이 큰 작물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산콩 값이 크게 내려간 건 달리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콩은 다루기 편한 작물이고, 돈이 그나마 되는 것이니 농촌의 주력 작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두나 수수 같은 작물의 경우 국산은 이제 거의 찾기 힘들다. 농사짓기 어렵고 잘 안되면 소출이 문자 그대로 이 되는 어려운 작물인 탓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마트에서 국산콩 두부가 늘었다고 좋아라 했으니, 이 가슴 쓰린 속사정이 더욱 아프다. 어찌 되었든 올해 옥수수 맛이 유달리 좋은가 보다. 시장에 보이거든 한 자루씩 사주시고, 가능하면 직거래로 빨리 받는 것이 좋다. 옥수수는 특성상 수확 후 보관하면 맛이 떨어지므로 빨리 삶아 먹는 게 좋기 때문이다.

 

그저 삶는 것도 좋고, 아이들 좋아하는 방식으로 구워도 좋다. 일단 소금물에 삶은 후 버터를 발라 프라이팬에서 낮은 불에 잠깐 구워도 맛있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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