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홍천농고 계란

지난 713일자 강원일보에는 작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홍천농고가 국비 지원을 받아 전문농업인학교로 발전하게 된다는 게 요지였다. 기사에 의하면 국비가 51억원까지 투입된다고 한다. ‘창조농업 선도학교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농업은 국가의 근간이라는 말을 차치하고라도 이렇게 국가에서 강력한 지원을 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화려한 뉴스와는 달리 우스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이 학교에서 생산한 계란의 판로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강원도민일보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요지는 이렇다. 학생이 실습하는 양계장에는 2500마리의 산란계가 있다. 그래서 매일 2000여개의 계란이 나오는데, 이것을 개인에게 팔면 불법이 되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다. 홍천농고 계란은 지역에서도 품질이 좋기로 평판이 나 있다고 한다. 한데 그간 닭 사육지 규모가 300이하면 개인 판매가 허용됐는데, 올해 2월부터 50이하로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학교의 사육지는 50를 넘는다. 계란을 직접 개인에게 판매하려면 냉장탑차를 사고, 종사자 보건증을 구비하고 연간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이렇게 안 하면, 개인 판매 대신 수집업자에게 싸게 넘겨야 한다. 학생들이 피땀 흘려 알뜰히 보살펴 기른 닭이 낳은 계란을 제값 받고 의미있게 파는 일이 막혀 버린 셈이다.

 

법이 창조농업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고나 할까. 이 일에는 나도 결부되어 있다. 어찌어찌 이 계란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학생들도 격려하고 나도 좋은 계란을 받아서 요리하기 위해 구매를 추진했다. 계란 사는 일에 복잡한 문제가 생기리라고 짐작이나 했겠는가. 식당을 운영하는 여러 동료들에게도 구매를 권유했다. 기왕이면 미래 농업을 짊어진 학생들에게 좋은 일 좀 하고, 품질도 뛰어난 무항생제 계란을 싸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졸지에 법이 바뀌면서 나는 이 계란을 먹고 요리에 사용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원래 이 계란은 홍천농고에 귀한 존재였다고 한다. 교직원이나 인근 주민들, 학부모에게 판매해 장학금 재원을 조성하는 알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판로가 막혀 계란이 창고에 쌓이기 시작했다.

 

옛날 동화에 이런 게 있다. 한 농부가 계란을 팔아 병아리를 사고, 다시 암탉을 사고, 다시 염소와 돼지를 사고, 다시 소를 사서 크게 농장을 꾸려 부자가 될 꿈에 부푼다. 그러다가 부주의로 계란을 떨어뜨려 꿈이 산산조각난다.

 

농업은 최첨단 산업이면서 국가 육성 산업의 기본이다. 그러나 농고나 농업전문학교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이런 형편에 고군분투하는 전국의 농고생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바로 창조경제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나와 내 동료 요리사들은 홍천농고의 계란을 받아서 요리하고 싶다. 계란 요리가 얼마나 맛있는데.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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