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김영란법과 한우

김영란법이 합헌 결정을 받으면서 한 장의 사진이 화제에 올랐다. 한우 생산자 단체에서 5만원 이하에 맞추어 초라해진 한우선물세트 모형을 들고 항의하는 장면이었다.

 

선물세트 시장이 제법 큰 몫을 차지하는 한우 생산자로서는 매우 심대한 타격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안 그래도 한우 가격이 치솟고, 경기 부진으로 한우 판매가 어려운 상황에서 더 큰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한우는 2012년부터 가격폭락이 이어지자 어미 소 도축 등으로 방어하면서 이미 가격 상승이 예견되어 있었다. 정부로서는 한우 가격 상승에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은 듯하다. 수입 소나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대체재를 믿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에 한우값이 얼마나 떨어졌냐면, 군대 급식에도 한우를 쓰겠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사육농가에서 사료값을 댈 수 없어 송아지를 굶기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인기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송아지고기를 사라고 유통업자가 내 가게에도 제안을 했다. 수입소가 아닌 한우 송아지였다. 도축해서 파는 게 길러서 손해 보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도 한우는 한반도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시기 동안 비쌌고, 지금도 비싸다. 이른바 접대에서 메뉴를 한우로 정한다면 신경 좀 쓰는 일이다. 한우 파는 식당 가격이 비싸니, 이른바 정육식당이 등장했다. 정육점 허가를 내고 고기를 팔되, 고기 구워 먹는 공간은 별도로 하여 위법을 피해갔다. 정육점식으로 고기를 도축하고 판매해서 값을 내렸다. 사람들은 그 고기를 산 후 다른 공간으로 가서 상추값, 숯값을 따로 내고 고기를 구웠다. 한우에 대한 우리의 애정과 갈망은 드높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미국산 수입쇠고기 반대운동은 광우병의 염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불을 지폈지만 다른 각도에서는 한우에 대한 남다른 감정이 배경이 되었다. 풀 뜯는 한우는 가장 접하기 쉬운 민족적 이미지이고, ‘누렁소라는 이름만 들어도 친근감을 느낀다. 심지어 중국 옌볜의 외곽에서 보는 누런 황소는 조선족의 혈통을 확인(!)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 한우 대신 미국산 소를 먹으라는 정부가 미웠던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한우값은 한우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싸질 수 없다는 점이다. 근육 내 지방함량이 높은 고기만 원뿔 투뿔 하며 대우해 주니 고지방, 고단백 수입 사료를 중심으로 급양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런 불만을 감지한 당국에서 기존 등급제를 손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담이지만 나는 2, 3등급 한우를 사서 요리에 쓰고 있다. 값은 원뿔, 투뿔에 비해 절반인데, 맛은 더 좋다(라고 생각한다). 등급제가 현행 방법에서 벗어난다면, 소 사육하는 회사와 농가에도 다른 여지를 던져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한우라면, 누구나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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