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삼겹살, 연탄과 노동자

조지 오웰은 훌륭한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대단한 르포라이터였다. <위건 부두 가는 길>에 대해 모르는 사람 중에는 이 르포를 바닷가 기행문 정도로 아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꼼꼼한 필치로 문자 그대로 ‘막장 인생’을 사는 영국 탄광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기록한다. 높이가 1.5m 내외인 갱도를 걷는 것도, 기는 것도 아닌 구부정한 자세로 직접 이동하면서 광원들의 고통을 체험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 자세로 8㎞가 넘는 갱도를 걸어야 비로소 탄을 캐는 현장에 도달한다고 그는 고발한다. 왕복 16㎞, 이동시간은 아예 노동시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언제든 갱도가 무너질 위험에 처한 채, 냉방 시설도 없이 곤죽의 땀을 흘리면서 문자 그대로 악전고투하는 광원들을 보여준다. 그런 힘든 노동을 하면서 먹는 음식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는 쓴다.


“(점심) 도시락은 대개 비계 바른 빵 한 덩이와 차가운 차 한 병이 전부다….”



출처: 경향신문 DB



우연의 일치인지, 우리 광원들도 비계를 먹고 그 힘든 노동을 버텨냈다. 강원도 영월에 가면 종종 ‘삼겹살 발상지 영월’이라고 쓴 광고판이 보인다. 1960년대에는 삼겹살이 싼 부위였고, 그 덕에 광원들이 많이 사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삼겹살은 실제로 고기라기보다 비계다. 그래서 서양에서 고기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값이 아주 싸다. 영월에는 안 그래도 도비와 군비를 들여 만든 삼겹살 식당이 있다. 이름이 마차집이다. 돼지비계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가 6000원이다. 돼지기름이 기관지에 쌓인 탄가루를 씻어낸다는 속설을 보여주는 메뉴다. 비계를 굽고 막소주를 마셨고, 찌개를 끓였다. 그들에게 무슨 낙이 있었으랴. 막장 드라마, 막장 인생이라는 당대의 수식어는 바로 탄광에서 나온 말이다. 어쩌면 이런 수식어는 탄광 노동자에게 대한 모욕일 수도 있겠다.


삼겹살이 목구멍의 먼지를 씻어낸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근거는 없다고 한다. 비계를 아무리 먹어도 오랜 광원 생활을 하면 대부분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다. 진폐증이 그것이다. 송병건 선생이 쓴 <산업재해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다. 흥미로운 통계가 눈에 띈다. 2006~2011년 영국의 한 산업재해 통계인데, 근골격계 질환보다 ‘스트레스·불안·분노’ 질환에 걸린 환자가 더 많다. 과거의 막장 같은 노동 환경은 개선되고 있는지 몰라도, 정신적 노동 강도는 훨씬 더 강해진다는 의미로 읽힌다. 조지 오웰이 썼듯,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은 엄청난 산업재해도 겪어야 했다. 광원들은 허파를 망쳤고, 기계공은 손가락을 잃었다. 현대의 노동자들은 육체적 산업재해는 줄어들었는지 몰라도, 정신적 재해에 내몰리고 있다. 그 스트레스에 우리가 찾는 처방은 대개 고작 삼겹살이다. 그것도 ‘연탄불’에 굽는 삼겹살이라면! 지글거리는 비계에 소주를 털어넣는다. 샥스핀이니 송로버섯이니 하는 것을 구경도 못해본 노동자들이 속을 달래는 방식이다.



|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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