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갈치

갈치가 풍년이라고 한다. 바다가 잔잔해서 조업일수가 늘었고 갈치 어장에 플랑크톤이 풍부해져 갈치 먹이가 되는 어종이 많아진 까닭이다. 요즘 시내에서 먹는 갈치는 대부분 외국산이다. 시인 출신이 대통령이었던 ‘세네갈’산(産)이다.


‘축구 말고 아는 거라곤/ 시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는/ 세네갈,/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도 시 좀 읽으세요 했다가/ 텔레비전 책 프로그램에서 통편집도 당하게 만들었던/ 세네갈’이라고 시인 김민정이 ‘갈치’를 보고 읊었던 시도 있다. 


수입 갈치는 크되, 살점이 덜 달고 가시가 억세다. 지중해, 인도양 쪽에 이런 갈치가 있어서 수입되어 팔린다. 큰 갈치가 잘 안 잡히니 수입이 그 틈을 메운다. 모처럼 굵은 갈치가 좀 싸졌나보다. 그래도 부담스러운 값일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 DB

한때 어머니의 어종은 꽁치, 갈치, 정어리, 고등어, 오징어, 동태였다. 여기에 청어와 양미리, ‘바께쓰’로 팔았다는 도루묵, 임연수까지 더하면 서민의 10대 어종이었다. 갈치는 구워 먹고 지져 먹었다. 갈치 맛은 시커먼 내장이다. 더러 알이 있기도 했는데, 그게 일미였다. 남도에서는 갈치속젓으로 온갖 음식의 맛을 냈으며, 어린 갈치(풀치)를 말려서 조려 냈다. 인천에서는 먹갈치를 사서 소금에 절여놨다가 구웠다. 


제주에서 처음 먹은 갈치회는 충격이었다. 맛도 좋았지만, 갈치도 회가 된다는 사실이 서울 촌놈에게는 놀라웠다. 한때 제주에서 요리 한 접시 시키면 고등어회와 갈치회는 서비스였다. 주객전도랄까 본말이 바뀌었달까, 이젠 고등어회와 갈치회를 먹으면 다른 회가 덤으로 상에 나온다. 참고로 은갈치와 먹갈치는 품종의 차이가 아니고, 어로 방법의 차이에서 나온다. 그물로 잡으면 갈치 표면의 은분이 벗겨져 빛을 잃고 거무튀튀해진다. 그런 걸 먹갈치라고 한다. 은갈치는 낚시로 잡아 반짝이는 몸빛을 보여주는 녀석들이다. 


제주 성산항에 아침에 가면 눈이 부시다. 갈치 때문이다. 올해 모처럼 풍어라니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한 마리 굽고 조려봤으면 좋겠다. 칼칼하고 향이 좋은 고춧가루를 듬뿍 치고, 무와 감자 깔고 지지고 조리면 그 맛이 절품이다. 밥반찬에 소주 안주에 이만 한 게 있을라나. 내 후배는 ‘생조당’ 당수이다. 생조는 생선 조림의 준말이다. 갈치 조림은 그간 비싸서 못 먹었으니 이번에 회포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갈치를 ‘太刀魚’라고 쓴다. 칼처럼 생겼으니 갈치인 것이다. 번쩍이는 싱싱한 갈치를 보면, 거울처럼 얼굴이 비친다. 칼이라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베어도 날이 잘 들 것 같은 자태다. 중국인들은 ‘帶魚’라고 부르는데, 허리띠란 뜻이다. 관복에 쓰는 넓적한 요대를 닮았다. 


이탈리아에도 갈치가 있다. 이 좋은 생선의 살을 다 발라내더니 이탈리아식 만두소에 써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국 말고 갈치를 제대로 대접해주는 나라는 없다. 한국이 갈치가 제일 비싼 나라다. 오죽하면 세네갈산이 수입될까. 어쨌든 새벽시장에 나가봐야겠다. 갈치의 눈부신 몸매를 구경하러.



|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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