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하동관’ 한 메뉴, 여러 주문법


현존하는 오래된 식당 이름의 상당수는 주인이 지은 것이 아니다. 무허가로 장사하다가 세무서 등록을 하면서 급히 명명하는 것도 많았다. 전주집, 부산집, 수원집 같은 지역 이름을 쓰는 노포의 다수가 이 경우다. 손님이 지어주는 식당도 있었다. 골목집, 감나무집, 육교집, 춘자네, 둘째집 같은 이름이 그랬다. 가게가 자리한 지리적 특성이나 주인이나 주인 딸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 가게 마당에 나무 한 그루쯤 자라고 있었을 테니 아주 효율적인 가게 구분법이 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보신탕집의 절대 강자는 ‘싸리나무집’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주인의 신체적 특징과 성격을 담아서 명명되기도 했다. 털보네, 욕쟁이할머니집, 딸부자집, 키다리집, 코주부네. 우리 외식사는 오랫동안 허름한 골목 바닥에 있다가 경제성장과 함께 하나둘 솟아나오기 시작한 식당들로 이루어졌다. 탁자 숫자로 세금을 매기던 시대도 있었다. 돈 많이 번다는 소문이 나면 세무원이 가게 앞에 앉아서 계수기를 눌렀다는 전설도 회자된다.

 

 

하동관은 70여 년 역사의 노포다. 백년식당이라고 불러도 될 장안의 몇 안 되는 집이다. 이 집이 흥미를 끄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몇 가지 인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재료가 떨어지면 천하없어도 문을 닫는다는 점, 오랜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개성 강한 서울음식이라는 것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주문법에 주목하게 된다. 스무공, 스물다섯공이라는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문자 그대로 2만원, 2만5000원짜리 국밥이다. 한우 내장과 수육이 더 푸짐하게 들어간다. 그것을 그저 숫자로 부르지 않고 약호로 ‘스무공’이라고 표현한 재치가 독특하다. 메뉴판에 ‘통닭 500원’이라고 해서 초행자를 놀라게 한다. 실은 계란을 일컫는 과장법(?)이다. 냉수는 또 어떤가. 술을 막 파는 집이 아니었던 하동관 특유의 ‘암호’다. 1000원짜리 지전을 홀 직원에게 쥐여주면 소주 반 병을 담은 물잔을 건네면서 생겨났던 것이 이제 ‘정식 메뉴’에 올라 있다. 그뿐이랴. 기름을 싹 걷어낸 ‘민짜배기’는 또 어떻고 밥을 조금만 말아달라는 ‘넌둥만둥’은 또 얼마나 유쾌하고 재치 있는 명명이냔 말인가. 더불어 ‘맛뵈기’와 ‘뜨겁게’도 널리 쓰던 주문이었다. 이런 암호 같은 주문을 하고, 그걸 직원이 척척 알아들으면서 소통하던 하동관의 옛 풍경은 지금도 여러 묵객과 장안의 미식가들의 추억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주로 단골들이 만들어내고, 그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다채로운 주문을 소화해낸 이 곰탕집의 역사는 이제 전설이라고 해도 되겠다. 단 한 가지 메뉴인 곰탕에 이처럼 포도송이 열리듯 풍성해진 주문법이 있다는 건, 우리 외식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민속박물관이 유형의 것이 아니라 무형까지 포괄한다면, 일착으로 얹어도 될 사례가 아닐까 싶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외치는 손님들 사이에서 묵묵히 곰탕을 먹는다. “여기 냉수 한 잔, 밥 넌둥만둥, 내포 많이!”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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