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지진 공포

우리와 별 상관없을 줄 알았던 지진이 현실이 됐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늘었다. 공황장애를 앓는 환자도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원전에 대한 안전이 화두에 올랐다. 시뮬레이션이 가동되었다. 경주 인근에 감당할 수 없는 지진이 오면 해운대에서 부산까지 초토화되는데 90분이라고도 한다. 그것으로 끝이겠는가. 원전이 무너졌다는 건, 그저 다리나 건물이 무너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향후 수십 년 이상 후유증을 앓아야 한다는 뜻이다. 경주 앞바다를 비롯한 동해는 원전이 늘 말썽이었다. 이미 부산 기장에서 해수 담수화 공급에 대한 반대가 거셌다. 시료 분석 결과 바닷물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는데, 어떻게 그 물을 먹겠느냐는 분노였다. 이런 ‘사소한’ 문제로도 주민은 삶이 위협당한다고 느낀다.

 

 

하물며 원전이 지진으로 무너지고, 후쿠시마 같은 사태가 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시민 사회에서 끊임없이 원전 가동에 대한 문제제기, 새로운 원전 건설 반대를 외쳤지만 들은 체도 않던 게 정부다. 과연 당신들은 미구에 닥칠지도 모르는 거대한 지진과 그 여파에 대한 어떤 대책이 있는가. 시민은 일본 정부에서 발행한 방재 매뉴얼 번역본을 구해다가 보기도 한다. ‘국가’는 그 울타리에 속한 시민에 대한 안전을 담보로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지진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체감하지 못한다. 얼마나 공포가 심한지 알 수 없다. 도쿄에 요리를 배우러 갔던 후배 둘이 짐을 싸는 둥 마는 둥 귀국해버린 일이 있었다. 몇 년 전 도쿄 지진 때였다. 공포가 몰려와서 한시도 불안감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경주 시민이 느끼는 상황이 딱 그럴 것이다. 나는 예전에 이탈리아의 남부 도시에 있었다. 요리를 배우기 위해 식당에 취직해서 일을 했다. 어느날 자는데 침대가 쑥 꺼지는 느낌이 왔다. 식당에서 요리하다가 휘청거려서 ‘내가 너무 피곤해서 착각한 걸까’ 한 적도 있다. 냄비에 담아두었던 토마토소스가 넘칠 정도였다. 모두 지진이었다. 엄청난 심리적 불안상태에 빠졌다. 일을 못할 정도였다.

 

공립병원에 갔더니 공황장애 진단을 내렸다. 그렇게 얻은 병이 20여 년 가까이 나를 괴롭힌다. 실제 지진으로 무언가 신체적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 도시의 주민은 시쳇말로 마마 호환보다 무서운 게 지진이다. 한때 도시 전 주민의 3분의 1이 지진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1908년 ‘시칠리아 메시나 대지진’이 바로 그것이다. 진도 7이 넘는 강진으로 10여만 명이 숨졌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지진이 멈추지 않았다. 초·중등학교에 가면, 복도에 온통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아이들 솜씨 자랑이 아니었다. 지진 발생 시 대피 방법 설명이었다.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게 그림으로 만들어놨다. 창피한 말이지만, 그때 겪은 공포는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나는 물과 상하지 않는 비스킷을 구석방에 숨겨두었다. 아내는 그런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경주 시민들의 호소를 들어보라! 또 우리는 각자도생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가.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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