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이질적 감각의 맛

▲ 영어덜트 원작 영화, 한국서는 늘 참패
‘킹스맨’은 영어권보다 크게 흥행 주목
보편적 영국 이미지 고유한 색깔 유지
‘환상’아닌 현실 같은 신선한 자극 선사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영국이나 호주 같은 영어권 국가보다 흥행 성적이 더 높다는 것도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 할리우드 영화계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소비국으로 떠오른 한국의 관객 성향을 분석하느라 매우 분주해 보인다. 사정은 한국 영화계 내부도 유사하다.

우리 영화 시장에서의 흥행 성적이 북미 흥행 성적과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영어덜트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영화들만 봐도 그렇다. <헝거게임> <메이즈 러너> <다이버전트>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등은 높은 아마존 판매율을 기반으로 영화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이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였다. 영어덜트 원작 영화, 특히 판타지 서사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늘 참패의 고배를 마셨다. <토르>나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만화 및 그래픽 노블 원작의 결과도 비슷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흥행과 한국 시장에서의 흥행을 정비례로 해석하기엔 이미 그 간극이 꽤 넓어졌다는 의미다.

<킹스맨>의 흥행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 역시 이 간극이다. 한국에서 통한 <킹스맨>의 재미, 다른 할리우드 영화와 구분되는 <킹스맨>만의 개성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킹스맨>은 할리우드 영화지만 할리우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선, 진한 영국풍이 그렇다. <킹스맨>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그래픽 노블 작가 마크 밀러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감독인 매튜 본 역시 영국 출신이다. 제작과 배급엔 21세기 폭스사가 관여하고 있지만 실질적 콘텐츠를 따져보자면 영국의 DNA가 지배적이다.

<킹스맨>이 오마주하고 있는 대상, 존경심으로 재창조하고 있는 대상 역시 영국의 작가 이언 플레밍이 쓴 소설 <제임스 본드> 시리즈이다.

허구적 인물이긴 하지만 제임스 본드의 고향은 마크 밀러와 같은 스코틀랜드이다. 영화 곳곳에는 제임스 본드와 영국적 전통에 대한 향수와 찬사가 넘쳐난다. 뛰어난 학자들이 사서삼경의 구절로 지식 대결을 하듯 <킹스맨>의 인물들은 ‘007 시리즈’의 대사로 대결한다.

이러한 세부사항들은 <킹스맨>을 전형적 할리우드 스탠더드식 블록버스터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 영국식이라는 게 영국의 사실주의적 복원이 아니라 영국에 대해 합의된 보편적 이미지라는 사실이다.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한 장면.


맞춤 수트를 빼입고 옥스퍼드 신사화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영국식 악센트의 신사, 이는 2015년 영국 런던의 일반적 남성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영국’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에 가깝다. 영화는 이 추상적 이미지를 인물들의 허구적 캐릭터로 극대화해낸다.

그런 점에서, <킹스맨>은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로 가득한 전형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구분된다. 적어도 <킹스맨> 안에는 현실적인 인간과 사실적 관계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거대한 인공 미로나 가상 도시가 눈앞의 이미지로 펼쳐진다고 해도 몰입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 관객에게 <킹스맨>의 과장된 액션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계층적 차별 문제나 아동학대와 같은 문제들이 방탄 우산이나 대기권 탈출과 같은 영화적 허구에 대한 완충작용을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은 최근 개봉한 <채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채피>는 인간을 대신해 치안을 담당하는 로봇 ‘채피’에 대한 이야기다. 로봇과 인간, 마음과 두뇌의 실체는 이미 <로보캅>이나 <트랜센던스>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러 번 허구화했던 소재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의 배경이 시카고나 뉴욕이 아니라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라는 점이며 감독이나 배우들 역시 남아공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채피> 역시 할리우드 영화이기는 하지만 뻔한 미국 영화와는 다른 질감을 간직하고 있다. 자막이 필요한 남아공의 하층계급식 영어가 난무하지만 그 서걱거리는 질감은 할리우드 스탠더드가 줄 수 없는 신선한 자극을 선사한다. 현실에 닿아 있는, 다른 상상력, 그게 바로 <채피>나 <킹스맨>과 같은 영화들이 주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적어도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할리우드 영화에는 수많은 장르들이 공존했다. 로맨스도 있었고, 멜로드라마도 있었으며 웨스턴이나 누아르, 갱스터도 건재했다.

하지만 만화를 원작으로 한 슈퍼 히어로물들과 흥행작들의 리부트, 리메이크가 일반화되면서 언제부터인가 할리우드 영화는 뻔한 블록버스터 문법으로 획일화되었다. 기술적 발전으로 세련된 그래픽 이미지로 가득 찬 판타지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철저히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을 소비할 것을 요구한다.

<킹스맨>이나 <채피>와 같은 작품들은 할리우드 스탠더드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는 작품이다. 이 고유함은 할리우드와 다른 DNA를 가진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이질성의 충돌, 문화의 힘은 이 이질성에서 비롯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북미 영화 관객의 입맛에 최적화되면서 한편으로는 다양한 미각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할리우드 영화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최근 한국 영화계는 한두 편의 천만 영화가 한국 영화 전체의 감각을 지배하는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동일한 감각만큼 예술에 있어서 치명적인 것은 없다.

다양한 이질성을 수혈하는 것, 그것이 곧 한국 영화계의 면역력을 높이는 길일 것이다.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평등과 침묵  (0) 2015.04.12
청춘, 가벼움이 허락된 시간  (0) 2015.03.29
먹방과 서사적 발효의 시간  (0) 2015.03.01
나의 템포에 따르라  (0) 2015.02.15
실화와 허구 사이  (0) 2015.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