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재난지원금의 바른 예

예전에 기본소득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악플이 주렁주렁 달렸다. 세금 퍼주기냐, 근로의욕을 감소시킨다, 심지어 공산당이냐는 말도 들었다. 어제 한 인터뷰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기본소득을 언급했다. 심지어 “절대 민주당이 (기본소득 헤게모니를) 가져가게 두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보수에서도 기본소득을 강력하게 말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기본소득 하면 먼 나라 얘기 같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한데, 실은 우리는 이미 정치 성향이나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에 찬성하고 그걸 받아 쓰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바로 기본소득의 일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한 지자체도 있다. 자금의 성격이 그렇다. 재산이 몇 조원 되는 재벌도 국민이니까 받는다. 재산이나 판정 기준 따위는 없다. 그게 기본소득의 보편적 취지와 같다. 다만 이번 건은 일회성이고, 기본소득은 지속적인 지급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게 다르다. 


그런데 정부(주로 재경부서)는 이번 지원금이 기본소득으로 여겨지는 걸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다음에 유사한 재난이 닥칠 경우 ‘무조건’ 또 줘야 하는 자금으로 여길까 두려웠을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소득화되는 걸 저어한다는 뜻이다. 


나는 일개 요리사이고, 국가 재정 상황을 잘 모른다. 다만, 이번에 정부와 각 지방정부에서 제공한 여러 종류의 재난지원금 내지는 재난기본소득은 시장에 활력을 줬다. 많아야 가구당 200만원에 이르는, 어찌 보면 큰돈이 아닌 액수였지만 바닥 상권에 풀리면서 막힌 혈관이 뚫리는 듯한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나처럼 식당일 하는 사람들은 전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거리의 고깃집과 치킨집엔 가족끼리 나와 배불리 식사하는 장면이 몇 주 연속 이어지고 있다. 매출이 코로나19 이전으로 거의 회복되었다는 집들도 있다. 물론 단기적일 것이고, 혜택을 충분히 보지 못한 업종도 있을 것이다. 돈이란 원래 ‘돌고 돌라’고 해서 돈이라고 한다. 식당과 동네 마트, 재래시장에 풀린 돈은 쌓이지 않고 돈다. 그들조차 당장 들어온 돈을 쟁여두지 못하고 써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선순환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셋인 후배가 있다. 여행 가이드로 먹고사는데 일이 완전히 끊겼었다. 몇 달간 수입 제로였다. 그는 경기도, 파주시,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금을 차례로 받았다. 아이들에게 돼지고기를 사먹이는데, 환하게 웃으며 입을 우물거리던 막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 다 같이 오랜만에 고기 먹으니까 좋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목이 메어 겨우 소주만 마셨다고 한다. 가족의 부활이랄까. 정부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라. 어차피 빚을 내야 한다면, 지금 내야 빛난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