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영업투혼’ 내모는 세상

여러 가지 좋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말이다. 그렇다. 심지어 프로야구도 열린단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정상 개막일을 이미 훌쩍 넘겼고 올해 리그가 열릴지도 알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경기를 했던 메이저리그인데. 우리는 국민과 정부가 다들 잘해내고 있는 까닭에 참화를 피했다. 사람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얘기하고 있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는 죽음 이후의 안녕을 기원하는 분위기가 발화되는 대사건이었다. 전염병은 사회를 바꾼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식당일을 하고 있으니, 몇 가지 뚜렷한 징후를 보았다. 우선 술들을 잘 안 마신다. 주머니가 마르고 빚을 지는 그 끔찍한 1997년 외환위기 시대에도 술 소비가 줄지 않았다. 값이 싼 소주 소비량이 늘면서 전체 음주량을 유지했다. 이번은 다르다. 만남을 기피하다보니 술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 주 5일에 52시간 근무, 잔업 야근 회피 내지는 감축 정책, 회식 축소 같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왕성하게 술을 소비해주던 세대도 줄고 있다. 술 어지간히 마셔주던 베이비붐 세대의 나이가 이미 60대에 들어섰다. 환갑 넘어서 왕년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다. 마셔도 주량이 줄었다. 세월에 장사 없다. 젊은 세대는 돈이 없어서 못 마시고, 술 권하는 문화에 대한 반감 같은 것들로 덜 마신다. 술 잘 마신다고 자랑하는 분위기도 없다. 옛날 소주 도수는 25도였다. 이제는 이른바 세다는 ‘빨간 뚜껑’도 21도, 23도다. 집단의 힘과 단결을 강조하는 시대도 끝났다. 각자 알아서 잘 지내기, 개인의 평화와 안녕이 사회적 힘이 된다는 걸 깨달은 세대이고, 그런 세상이라는 걸 다 인정한다. 


사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어차피 변할 세상이었다. 코로나19는, 그 사태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수정구슬이 아니었을까. 앞서 메이저리그 얘기를 했는데 미국 야구기사를 보면서 놀란 건 아내 출산이나 가족 장례 같은 일이 생기면 월드시리즈 선발투수도 휴가를 가는 게 그들이다. 한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한국도 “아내 출산에도 출장 강행, 부친 임종도 미루고 눈물의 투혼” 같은 건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요는 세상이 그런 방식으로 변해갈 터인데,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 요식업을 다시 말하자면, 국민 70여명당 식당·술집이 1개꼴인 나라다. 국민 다수가 술 팔고 밥 파는 업자다. 개인의 삶을 구가하려고 해도, 죽자고 경쟁하는 가게를 벗어나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야구는 몰라도 식당업자는 아내 출산에도 ‘영업 투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다. 아아 그렇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