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유튜브 채널 ‘밀라논나(Milanonna)’의 ‘논나’, 장명숙 패션 크리에이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어우 한번 했으면 됐지. 어떻게 안 늙어. 나도 한번 젊어봤잖아.”
순간 시원한 박하를 씹은 듯했다. 노화를 거대한 재앙으로 치환하고, 안티 에이징(노화 방지 혹은 항노화라는 의미로 주로 화장품에 쓴다) 제품을 쓰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세상에서 이런 태도라니! 해가 바뀌면 다 같이 한 살을 먹는 조금 특이한 문화권의 한국인으로서, 새로운 나이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밀라논나를 소개하고 싶다.
1952년생인 장명숙은 패션 바이어이자 디자이너이자 교수이다. 밀라노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페라가모나 막스마라 등 유명 브랜드의 한국 출시를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채널 이름 밀라논나는 이탈리아의 지명인 밀라노와, 할머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논나’를 합친 단어다. ‘밀라노 할머니’ 정도 되겠다. 장명숙은 채널에서 자신을 ‘할머니’, 구독자를 ‘아미치’(Amici, 이탈리아어로 ‘친구들’)라고 부른다. 밀라논나의 아미치로서, 이 글에서는 장명숙을 논나로 칭한다.
논나의 채널을 구독하며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떡할래?” 30대 초중반의 표본들은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스무 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20대 때는 나이 드는 것이 그렇게 무서웠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트리(25세가 넘으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 서른 이상의 여성을 “상폐녀(상장 폐지됐다는 뜻)”라고 부르는 현실에, 작고 나약한 개인이 뭐 얼마나 대단한 배포로 맞섰겠는가. 서른 살을 계란 한 판이라고 부르며 자조하거나, 그 잔치가 그 잔치가 아님에도 서른 이후의 삶을 잔치, 즉 청춘이 끝난 후의 잔해처럼 취급하는 문화에는 확실히 기이한 구석이 있다. 우리는 젊음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데 익숙하다. 반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나이듦은 현대의학과 화학을 총동원하고, 치열한 ‘노오오오력’으로 방어해야 하는 역병처럼 취급한다. 제일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시기는 인생에서 아주 일시적인데 말이다.
‘에이지즘(Ageism).’ ‘연령차별주의’라고도 번역되며,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사상이나 행위를 뜻한다. 특히 노인을 향한 차별과 선입견을 가리킨다.
루이즈 애런슨은 <나이듦에 관하여>(최가영 역, 비잉, 2020)에서 “사지가 멀쩡한 왕년의 유명 인사도 늙으면 결국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가 되기 십상”이고, 그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2019년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기기의 오작동으로 쇼핑몰에서 비상벨이 울리고, 사람들은 급히 대피한다. 그런데 혜자(김혜자 분)가 탄 엘리베이터가 만원 경보음을 울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혜자를 쳐다본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 중 혜자가 가장 나이 들었다. 혜자는 먼저 탔음에도 그 눈빛에 떠밀려 스스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위기 상황에서 효율과 속도를 위해 우리 사회가 밀어내는 존재, 노인을 향한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영화 <69세>에서 여성 노인 효정(예수정 분)은 젊은 남성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하지만, 노인이라는 이유로 피해 사실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는 노인을 무성적인 존재로 뭉개는 에이지즘에, 피해자의 성적 매력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더해진 양상이다.
나이듦은 열등한 것이고, 노화는 최대한 지연해야 하며, 나이 든 티는 어떻게든 가려야 한다는 아우성 속에서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논나는 말한다. “50대의 장명숙은 이제 해방이다, 60대의 장명숙은 지금이 너무 좋다.” 2020년 4월에 올라온 논나의 어버이날 선물 추천 영상(LF 광고 포함) 제목은 “왜 젊어 보여야 해요? 산뜻하면 되죠!”이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 곳곳에서 논나는 자신의 나이가 듦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겨울에 베레모를 즐겨 쓰는 습관이나 직접 머리를 자르는 용도의 가위를 소개하면서 “할머니는 워낙 머리숱이 없으니까”라고 할 때, 탈모는 질병과 공포가 아니라 몸의 일부이다. 소화 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할 때도 과거와 비교하며 한탄하거나 비참해하지 않는다. 아미치들은 논나 소장품의 구매처를 물을 때마다 가볍게 좌절하는데, 물건 대부분이 오래되어 지금은 구하기 힘든 ‘레어템’이기 때문이다. 논나는 웃으며 말한다. “어떡해요. 할머니가 낡은 사람인데 물건도 다 낡았죠.”
누구나 늙는다. 한국은 이미 고령사회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고령인구 비율은 14.9%이다. 홈쇼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슈퍼푸드도, 유명 피부과의 시술도, 진시황의 권력과 삼성 회장의 재력도 시간의 흐름과 노화는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잘’ 늙을지, 나이듦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지, 모든 눈금이 젊고 건강한 가상의 청춘에 맞추어져 있는 사회의 인식을 어디서부터 바꿔가야 할지 고민할 차례다. 논나의 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게 무서웠는데, 할머니를 보면서 아…이렇게 나이 들어간다면 너무 멋있을 것 같다 하고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논나가 자신을 스스로 다정하게 ‘할머니’라고 칭할 때, 자신의 역사가 고스란히 밴 몸과 물건의 ‘낡음’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낼 때, 약해진 몸과 물건을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쓰는 모습을 보여줄 때 깨닫는다. 머리가 빠지고 주름이 생기고 소화가 안 된다고 해도, 인생은 끝나는 게 아니며 불행하지 않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실을, 비로소.
생각해 보면 나이듦 그 자체보다, 나이듦을 둘러싼 온갖 ‘카더라’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나이듦이 나의 모든 개성과 역사와 취향을 잡아먹는 줄 알았다. 기회와 변화는 청춘의 특권이고 기능이 떨어지는 몸은 골칫덩이라고만 들었으니까. 사회가 보여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표상은 너무 납작하고 단순하고, 촌스럽고, 제약이 많았으니까. 나이와 함께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볼 기회가 드물었으니까. 막상 뛰어들고 보니 막막하던 30대는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다. 잃은 것만큼 ‘나’라는 인간에게 익숙해지면서 얻은 것도 있다. 우리는 이미 노년의 도전과 즐거움을 널리 알린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채널명 ‘박막례 할머니 KoreaGrandma’)를 만났다. 또한 이런 불안을 인지한 40~50대 여성 작가들이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전보다 다양한 예시를 접할 기회가 늘었다. 하긴 좋기만 한 순간이나 나이가 어디 있을까. ‘좋을 때다’라고 여기는 남의 시선이 있을 뿐이지.
스포일러가 있어서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눈이 부시게>에서 25세의 혜자는 하루아침에 78세 할머니가 된다. 현실을 받아들인 혜자는 자신의 신체 나이부터 측정한다. “내가 어디까지 되고 어디까지 안 되는지 알아야 될 거 아냐.” 혜자는 계단을 오르고 달리면서 어느 단계에서 숨이 차는지, 언제 무릎에서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나는지, 뛸 수 있는지 없는지 등을 알아가며 몸에 적응한다. 변화한 몸은 당연히 25세인 혜자의 성에 차지 않으나, 어쩔 수 없다. 소수를 제외하면 최고 수준의 건강과 체력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로봇이나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이듦에 관하여> 역시 의학에서 소외되는 노인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현대의학과 더불어 행복한 노년을 살아갈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의연한 척했지만, 나 역시 부모나 할머니의 노화를 실감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흉터가 빨리 아물지 않아 심란해하고 슬쩍 리프팅 제품을 고를지도 모른다. 인간은 늙을 뿐 아니라 망각하기까지 하니까. 참 효율이 낮죠?
그럴수록 부지런히 돌보고 상기해야 한다. 노화는 비극이 아니며, 나이 든 당신과 나는 패배하거나 열등하지 않음을. 노화는 개인의 역사이고, 몸은 나이 들어도 나의 일부이자 동반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서로의 아미치가 되어 말하고 싶다. 새해에는 조금 다른 조건으로 살아가는 노인과, 변화하는 나의 몸에 조금 더 너그러워지자고.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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