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오스왈도 과야사민

오스왈도 과야사민, 비명Ⅱ, 105×75㎝, 캔버스에 유채, 1983

오스왈도 과야사민(1919~1999)은 에콰도르의 존경받는 시각예술가이다. 국민의 불평등한 삶을 외면하지 않은 작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려 했고, 그림을 매개로 부침의 역사 속 억압받는 주민들과 가난한 이들의 형제이자 친구가 되려 한 인물이다.

 

그는 살아생전 1만30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대부분 작가 스스로 ‘피의 강’이라 칭한 20세기의 광기가 담겼다. 독재와 지역 간 대립, 분쟁 및 내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에콰도르의 암울한 현실을 비롯해, 인간이 행한 폭력과 헐벗고 굶주리며 고통받는 인류 등이다.

 

작품 ‘기다림’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방문한 뒤 인간의 잔인함을 기억하기 위해 제작됐다. ‘산의 머리’는 착취하는 자들에 대한 탄압받는 자들의 저항이 새겨져 있다. 이 밖에도 그의 여러 작품엔 인간이 인간에 가한 폭력의 책임자들, 그리고 이념과 사상 앞에 무기력한 사회 구성원들의 두렵고 비극적인 삶이 각인되어 있다.

 

민중의 불안은 ‘비명Ⅱ’에서 두드러진다. 과야사민 작품의 다수가 그렇지만 여기서도 눈을 손으로 가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거나 놀란 눈의 초상이 등장한다. 그는 특정인이 아니다. 엄혹한 세상을 그저 버티며 살아내야 했던 익명의 누군가요, 버거운 생에 남는 건 절규뿐인 현재의 우리들이다.

 

궁극적으로 과야사민의 작업은 인간에게 필요한 건 휴머니즘임을 가리킨다. 하나 그가 원한 인본주의적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선 정치·경제·종교를 이유로 한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으며, 각지를 떠돌다 죽어가는 난민들의 애타는 부르짖음도 변함없다.

 

불평등과 부조리, 불공정도 같다. 국민이라는 단어를 숨 가쁘게 내뱉지만 권력유지를 위한 권력의 새빨간 거짓말 역시 그대로다. 민의를 대변하는 게 아닌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위정자들의 파렴치엔 유효기간이 없다.

 

우린 과야사민이 강조한 것처럼 불행의 시대가 재발되지 않도록 맞서야 한다. 사람답게 사는 사회,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연계 혹은 각자의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시대의 대변자인 미술인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에 앞서 미술이란 무엇인지부터 자각해야 한다. 제 역할도 모른 채 천박한 상업주의와 저급한 욕망을 미술이란 이름과 교환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찰하는 게 먼저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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