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주범과 공범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유채, 260×325㎝ 

예술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칸트는 예술을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라 했다. 레프 톨스토이는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키는 수단’으로 봤다. 신인상파의 대부인 조르주 쇠라나 바우하우스 교수를 지낸 파울 클레 같은 작가도 톨스토이와 유사한 견해를 지녔다. 이들은 예술을 일종의 가교로 해석했다.

 

예술의 정의에는 시대 간 차이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에는 교리를 충실한 신앙심으로 옮기는 것이 예술이었다. 당시의 예술은 오로지 신을 위한 것이었다.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개념 또한 오늘과 많이 달랐다. 권력자와 성직자들, 자본가들에게 봉사하는 도구였다. 실제로 보티첼리를 비롯해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은 그들을 위한 주문생산자를 자처했다.

 

이 밖에 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움을 화폭에 가장 흡사하게 묘사하는 것을 예술로 판단한 시대가 있었고, 사물에 대한 자신의 인상과 감정을 주체적으로 담는 게 예술인 화파도 없지 않았다. 기원전 4세기경 생활상 필요에 의한 기술과 유희와 쾌락을 위한 기술이었던 예술에서부터 독자적 미적 영토를 확보하는 18세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정의는 이처럼 제각각이었다.

 

이 시대 역시 예술의 개념은 다양하고 폭도 넓다. 혹자는 예술계가 부여한 자격의 대상이라 말하고, 일부는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행위의식을 곧 미의식이자 예술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은 자유를 위해 저항하며 불완전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아래 적극적으로 현실의 삶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자본과의 거리만큼 확보되는 예술의 자율성을 옹호하며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연대의 언어로 위치할 때 참다운 예술이 될 수 있다.

 

안타까운 건 이와 같은 정의가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시들고 있다는 점이다. 만연한 상업주의에 덧댄 저급한 욕망, 시대성과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무책임, 열악한 신분과 가난의 노예화 등이 뒤범벅된 결과이다.

 

그리고 그 주범은 빈곤한 상상력으로 상품과 작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 불평등을 단지 불행으로 여기는 자들, 철학 없이 연명하는 부류이다. 권력과 출세에 예술을 도구화하는 어용지식인과 보신주의자들도 공범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