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황윤의 초록마녀 빗자루]그림자들의 섬, 그림자들의 목소리

아버지는 세일즈맨이었다. 그가 팔아야 하는 물건은 배였다. 거대한 선박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부담감을 가슴에 얹고 아버지는 머나먼 타국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쿠웨이트로, 사우디아라비아로, 영국으로, 베네수엘라로 떠도는 이주민의 삶을 살았다. 언어, 기후, 문화, 모든 것이 낯선 타국에서 아버지는 홀로 외롭게 1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견디며 배를 팔았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성장해야 했던 우리 형제들, 남편의 부재 속에 아이 셋을 키워야 하는 엄마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엄마는 매일 저녁 일기를 쓰듯 편지를 쓰셨다. 푸른색 항공 편지를 빼곡하게 채워가던 엄마의 글씨. 시시콜콜한 일상들이 매일 빨간색 우체통에 넣어졌다. 어린 나는 아버지가 해외 각국에서 보내오는 엽서를 우편함에서 제일 먼저 발견해 엄마에게 배달하는 재미, 거기에 붙어 있는 우표를 수집하는 재미에 빠졌고, 아버지가 큰 배를 판다는 자랑스러움으로 그리움을 달랬다. 막내인 내가 한창 귀염을 떨었을 네 살 때 먼 길을 떠났던 아버지는, 막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돌아오셨다. 기쁨도 잠시. 기업은 아버지를 차갑게 내던졌다. 젊은 인력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젊음을 바치고,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반납하며 회사에 충성한 대가였다. 그 후 우리 가족은 폭풍 같은 시절을 겪었다. 미국의 희곡작가 아서 밀러가 1947년에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반세기가 지나 지구 전체에서, 숱한 세일즈맨들의 가족에게서 그대로 재현됐다.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내며 독립하는 것만이 유일한 꿈이었던 나는, 대학 졸업 후 번듯한 기업에 취직했다. 아버지와 같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취직을 하고 보니 세일즈 업무였다.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해도 결국 판매성적으로 줄 세워지는 일. 기업이 어떻게 충실한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배신할 수 있는지 일찌감치 보았던 나는, 입사 일 년도 안 돼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언젠가 해고자가 될 거라는 불안감 속에 사느니, 스스로 자발적인 해고자가 되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헤매던 나는 마침내 영화라는 길을 찾았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문화 노동자가 되었다. 고용도, 해고도 없는, 나 스스로 나를 고용하는, 열정과 건강이 다하는 날이 퇴직일이 되는 직업. 정기적인 수입도, 4대 보험도, 휴일도 없고, 일은 고되지만, 행복하다. 내 카메라가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가장 억울한 피해를 입는 약자들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기계쯤으로 여기는 기업이, 비인간 동물들을 생명으로 여길 리 없다. 아버지를 내쳤던 그 기업은 아름다운 산과 강을 갈기갈기 파헤쳐 끝없이 이윤을 증식했다. 고함 한번 못 지르고 자본의 포크레인에 희생되는 야생과 비인간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인간의 예의라 생각한다. 카메라는 나의 자존감이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 포스터.

 

새삼스레 옛일을 반추하는 건,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을 보았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배를 짓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내 아버지가 팔아야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배를, 이 사람들이 이렇게 지었구나. 가슴이 먹먹했다. 화이트칼라였던 아버지의 노동은 블루칼라 주인공들의 노동과는 많이 다르지만, 기업의 칼날 앞에 고통받는 노동자로서의 현실은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만든 김정근 감독은 인쇄소, 신발공장에서 일하다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곽재규 두 노동자의 투신 이후 노동자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카메라를 들었다.

 

2010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을 시작으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30년 삶을 찾아 5년간 카메라를 들고 뛴 끝에, 영화 <그림자들의 섬>을 완성했다. 영화는 푸른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을 사진관에 초대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웃는 그들에게 조명이 드리워진다. 기업의 성장지표와 고도성장 뒤에서 단 한 번도 ‘조명’되지 못한 채 ‘그림자’로 살아왔던 그들에게 빛이 닿는 순간이다. 영화는 뉴스에서 ‘붉은 띠를 두른 투사’ 이미지로 묘사되는 노동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경청’한다. 별다른 극적 장치도, 화려한 CG도 없이 인터뷰 중심으로 구성된 영화는 그 어떤 픽션보다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그것은 쥐똥 묻은 도시락, 줄줄이 이어지던 동료들의 죽음 속에서도 인간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이, 땀 흘리는 노동이, 부끄럽지 않은 삶이 주는 감동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작업을 하던 19세 청년, 에어컨 실외기 작업을 하던 40대 노동자가 숨졌다. 2014년 한 해, 일하다 죽은 노동자가 1850명. 하루 평균 다섯 명이 희생됐다. 조선업계엔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벼랑 끝에 매달린 ‘그림자들’을 위한 헌사, 영화 <그림자들의 섬>은 8월25일 극장 개봉했다. 상업영화에 밀려 전국 15개가 채 안 되는 극장에서 상영되지만, 노동하는 모든 이들이 극장을 찾아가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 기업의 횡포에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 자존감으로 자신을 지켜내고 동료들의 손을 굳게 잡고 있는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그대는 분명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용기라고, 또 누군가는 희망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영화 속 김진숙씨의 말처럼, ‘마음’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린 섬이 아니다.

 

황윤 영화감독